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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03. 2023

아웃 오브 아프리카

by 카렌 블릭센

“자, 우리 쓸데없이 목숨 걸러 가요. 우리 목숨이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게 바로 우리 목숨이 지닌 가치니까요.”



데니스 핀치 해튼은 카렌 블릭센에게 비행기를 타러 가자고 권하면서 저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나오는 이 말은 실제 이 책의 작가와 연인이 주고받았던 이야기입니다. 여자의 머리를 감겨주는 남자와 그 편안함을 만끽하는 여자는 그 순간 부족함이 없었고 또한 눈 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대자연의 풍광을 보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아프리카라는 배경과 거기에 흐르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의 선율은 지상의 고단한 삶을 잊게 하면서 가벼워진 몸이 두둥실 떠오르듯 기분 좋은 느낌까지 선사해 주었던 멋진 영화였습니다.


이 책은 소설과 영화가 아닌 작가가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지낸 경험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회고록입니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 풍광과 다양한 작물 심기, 농사짓기의 어려움, 자신을 보살폈던 일꾼들, 키쿠유족이나 마사이족 등 원주민들과 유대관계, 토속문화 소개, 사자를 비롯한 동물 사냥 등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모든 사건을 이야기하듯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작가로서 섬세하고 짜임새 있는 그의 필력이 더해져 마치 천일야화를 들려주던 세헤라자데처럼 아프리카 속으로 끌어들여 거기서 호흡하고 있는 듯 벅찬 느낌마저 갖게 합니다.


블릭센은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서 농장을 꾸리려고 노력했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커피값이 폭락하고 작황마저 고르지 못한 데다 화재까지 일어나 농장은 파산하고 맙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연인 핀치 해튼이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7년간의 아프리카, 정확히는 케냐 생활을 접고 1931년에 덴마크로 돌아갑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블릭센은 그때부터 글을 쓰는 데 몰두합니다. 1934년 첫 작품으로 사랑을 찾아 방랑하는 사람들을 다룬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로 데뷔하였고 아이작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미국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되어 인기를 끌고 성공을 안겨줍니다. 그 뒤 케냐에서 지낸 경험을 담은 이 책을 발표하여 대작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P : 그곳의 풍경과 삶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바로 공기였다. 아프리카 고원지대에서 체류하던 시절을 회고하면 자신이 한때 높은 공중에서 살았다는 감회에 젖는다. 하늘은 연푸른색이나 보랏빛을 벗어날 때가 거의 없었으며, 강력하고 무게가 없고, 끝없이 변화하는 무수한 구름 떼가 하늘 높이 솟아 유유히 흘러갔다. 그러나 하늘은 푸른 활력을 품고 있어서 가까운 곳의 언덕과 숲을 산뜻한 짙푸른 색으로 그려 놓았다. 한낮에는 땅 위의 공기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섬광을 발하고 물결치고 빛났으며 모든 사물을 거울처럼 비추어 둘로 만들고 거대한 신기루를 만들어냈다. 이런 높은 곳의 공기 속에서 편안히 숨 쉬다 보면 어느새 기운찬 자신감과 상쾌한 기분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고원 지대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제목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인 이유가 있습니다. “아프리카를 떠나며”라는 영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라틴어 경구 <Ex Africa semper aliquid novi>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인데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뜻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책에서는 영화와 달리 애정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사냥에 나갔던 핀치 해튼이 오면 먼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처럼 맞아 함께 보낸 시간만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현실에서 그들은 연인이었으며, 유산을 했지만 아기를 갖기도 했습니다. 블릭센은 그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영국 상류계급 출신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탐험가 핀치 해튼은 끝내 모험의 길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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