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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16. 2023

로버이여트

by 오마르 하이얌

1859년 영국의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는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책을 한 권 만들게 됩니다. 인도 캘커타에 사는 자신의 친구에게서 받은 페르시아어로 된 책 한 권인데, 이 책은 11세기 책으로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가 쓴 4 행시로 이루어진 시집이었습니다. 출간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한 페르시아어 시집이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 시집에 담겨 있는 세계와 명상, 허무와 냉소, 페르시아가 주는 신비주의는 당시 영국의 실용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시대정신과는 맞지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서히 알려지더니 T.S. 엘리엇의 한마디(갑작스러운 개종과 같았다.)와 유진 오닐, 보르헤스, 아가사 크리스티까지 많은 작가들이 영감을 받은 책이라고 소개가 되면서 한 권씩 팔리기 시작하였고 입소문을 서서히 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책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랍어식 발음에만 치중하다 보니 <루바이야트>로 최초의 영문판이 발표가 된 것입니다. 페르시아어와 같은 언어로 본 실수로 인해 생긴 문제이고 우리나라의 몇몇 출판사들은 이 영문판을 보고 번역을 했기에 여전히 <루바이야트>로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에드워드가 “루바가”라고 한 페르시아어 “로바이”는 4 행시라는 뜻입니다. <로버이여트>는 “로바이” 의 복수이며 그래서 4 행시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발음도 “로버이여트”로 해야 합니다.


에드워드도 아마 이러한 문제를 인식은 했었던 거 같습니다.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고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번역을 직접 다시 하였고 총 5판의 에드워드판 시집이 나왔는데 모든 책이 다 다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창작한 4 행시도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원전에 근거한 시집이기도 하지만 번역가만의 세계도 볼 수 있는 재밌는 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문학에서는 이 책을 빼놓지 않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린 이 판본은 조금 특별합니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판이 아닌 오마르 하이염이 쓴 페르시아어 원전 시집입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두 버전은 다른 시집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거 같습니다. <루바이야트>는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번역판, <로버이야트>는 페르시아 원전판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좀 더 페르시아적이고 약간의 문화적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가 그렇듯 우리가 느끼면 장땡이기 때문에 배경보다는 문장이나 생각에 집중해서 읽어보면 정말 좋을 거 같습니다. 수학자이다 보니 숫자를 통한 해석이기에 좀 더 간결하고 직설적이기도 합니다. 담백하고 과도한 수사가 없기에 읽기도 편하실 겁니다.



P : 누구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니

번민 가득 이 마음 현재를 즐기라

달처럼 고운 이여, 달빛 아래서 술 마셔라

달 밝게 빛나도 우릴 찾지 못할 것이니


P : 마음이여, 세월이 널 슬피 만들고

네 맑은 영혼 별안간 육신에서 분리되리라

네 흙에서 새싹 돋아나기 전에

풀밭에 앉아 하루 잠시라도 즐기라



이 책에는 유난히 항아리 또는 옹기, 술과 여인, 술을 권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슬람에서는 술을 금기로 여기기 때문에 그야말로 파격적인데 표면적인 시어들만 보고 하이염이 술과 향락을 즐겼고 그런 생활을 권했다고 착각하기가 쉬울 수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지금 순간을 즐기며 현재에 충실하라는 매개체로 술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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