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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20. 2023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by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실제 책이 영화로 나온 이 작품은, 분명히 저는 활자를 보고 있지만 머리로는 영화마저 그려지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짧은 분량의 독서 시간이 무색할 만큼 아주 오랫동안 사람 마음을 헤집어 놓는 이 책은 네루다의 이름이 들어가서 그런지 시와 닮아있습니다. 미소를 머금으면서 읽다가 내 얼굴이 궁금해져 거울로 몇 번이고 확인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잡고 읽는다면 시 한 편이 삶과 자연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초 칠레의 작은 어촌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이곳은 시로써 사랑과 연대감을 얻는 데 최적의 장소로 나옵니다.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청년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아름다운 베아트리스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네루다에게 그녀를 칭송하는 시를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편지를 써주지 않고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메타포를 가르칩니다. 베아트리스에게 자연스레 사랑을 고백하게 만들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얼마든지 시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불어넣어줍니다.


P :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시의 본질을 알아버린 마리오는 네루다가 삶의 지표로 삼았던,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 시 한 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소중한 모습을 증명해 냅니다. 베아트리체와는 원하는 대로 결혼까지 하지만 네루다와의 이별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떠난 네루다를 위해 마리오가 선물로 마련하는, 이슬라 네그라를 상징하는 소리들을 녹음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오가 그를 위해 녹음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소리, 갈매기가 정어리를 쪼는 소리, 펠리컨의 날개 소리, 종소리, 등대 사이렌의 신음소리, 그리고 별들의 움직임 소리, 그리고 마리오의 아들이 태어나는 울음소리로 마무리를 하는데 네루다의 시가 마리오에게 사랑을 심어주면서부터 새 생명이라는 결실까지 이루어내는 과정들이 곳곳에 녹아 있어서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세상은 메타포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마리오는 깨닫습니다.


이 책은 어느 무명 저널리스트의 회고로 시작합니다. 작가 스카르메타인 듯한 화자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인 마리오를 회상하는 부분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위대한 네루다의 이야기보다 네루다의 시에 매료되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마리오 또는 자신이나 여느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갖가지 역사적 고난의 과정을 이겨낸 칠레와 그 어느 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경의의 메타포로 읽힙니다.



P : 하늘의 품에 휩싸인 바다로 나 돌아가노니,

물결 사이사이의 고요가

위태로운 긴장을 자아내는구나.

새로운 파도가 이를 깨뜨리고

무한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때까지…



네루다의 삶은 스카르메타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사실 그는 네루다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습니다. 네루다가 1943년 바다를 벗 삼아 조용히 지낼 곳으로 찾은 이슬라 네그라에서 기습 인터뷰로 가십거리를 만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다 쓰지도 않은 소설의 책 서문을 써달라고 어이없는 부탁을 하지만 돌아온 것은 소설부터 완성하라는 네루다의 핀잔이었습니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와 민중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었고 네루다처럼 스카르메타도 망명생활을 하다 1985년 이 책을 독일에서 완성합니다.


P.S : 실제 이슬라 네그라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네루다의 무덤이 있습니다. 네루다는 아마 마리오가 녹음기로 들려주었던 그 소리를 지금도 듣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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