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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11. 2023

체실 비치에서

by 이언 매큐언

연애의 끝은 남녀가 다르게 오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각자의 길에 서서 깨닫게 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각오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깨달음을 줬던 대상에게는 안타깝지만 더 이상 줄 수가 없습니다. 뒤이어 다른 상대를 만나게 돼서야 줄 수 있는 사랑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 아이러니를 깨닫게 해 준 책이 있다면 저는 이 단연코 이 책을 추천합니다.


주인공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맞은 첫날밤 같은 연애의 전환점은 누구에게나 오는 거 같습니다. 동행으로서의 첫날밤이 될지, 서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첫날밤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전환점이 첫날밤으로 나옵니다. 성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당시, 지금껏 순결을 지켜왔던 두 남녀는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드워드의 고민이 미숙한 첫날밤에 대한 걱정이라는 지극히 새신랑다운 고민인 반면, 플로렌스는 관계 자체를 혐오한다는 훨씬 무거운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첫날밤 잠자리에 실패한 후 플로렌스는 자기희생적인 결혼방식을 제안하지만 에드워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결별을 합니다.



P : 그들은 어떻게 만났고, 왜 이다지도 소심하고 순진했을까?


P : 그들은 너무 예의 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이 책을 보고 영화 “500일의 썸머”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톰과 썸머와 같은 결함이 있고,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썸머가 한없이 이상했지만, 두 번 세 번 영화를 다시 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난관을 극복하고 관계를 개선하려 했던 건 썸머였습니다. 자신의 운명적 사랑에 도취된 톰과, 개선하려는 썸머의 모습에서 책의 주인공들의 관계가 오버랩이 됐습니다.


책에서 결론이 굉장히 특이했는데, 에드워드는 여러 번의 난잡하고 중복된 연애도 하고 한 번의 결혼도 하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는 단 일 분도, 반 페이지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무미건조한 삶을 살지만 플로렌스에 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었습니다.



TMI : 책과 영화는 결론이 다릅니다. 소설에서 둘은 끝까지 재회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결혼 전 약속대로 플로렌스 공연에 에드워드가 C열 9번 좌석에 앉아 ‘브라보’를 외칩니다. 또 플로렌스는 첼리스트와 결혼을 하고 딸 이름을 에드워드와 체실 비치에서 의논했던 ‘클로이’로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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