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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06. 2023

주키퍼스 와이프

by 다이앤 애커먼

2017년에 이 책이 영화로 나왔었는데 잠시이지만 논란이 조금 있었습니다. 이유인 즉, 나치의 도움을 주는 장면이나 모습들이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책에는 부부가 유대인들에게 몰래 음식을 배달해 주는 과정, 불쑥불쑥 찾아오는 독일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피아노 연주가 유대인들에게 숨으라는 신호로 보이지 못하고 장면만을 본 상황들이었습니다. 사실 그 장면들 덕분에 많은 사람과 동물들을 살릴 수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최고의 한 수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시작은 천둥처럼 울려대는 폭격 소리와 그에 잇따르는 불길이 도시를 뒤덮고 건물들이 주저앉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살길을 찾아 헤매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의 상황입니다. 동물원도 전쟁의 광풍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첫 번째 희생은 동물원을 탈출해 인명 피해를 낼 수도 있는 맹수들이었고 일찌감치 죽임을 당합니다. 얼마 뒤 폴란드는 독일에 항복했고 공격은 끝났지만 그 자리에는 폐허와 유대인 대학살이란 나치의 광풍이 바르샤바에 불어올 날만 남아있습니다. 바르샤바의 모든 유대인이 게토로 강제 이주되고, 독일은 게토를 벗어나는 유대인뿐 아니라 유대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이도 처형할 것을 선포합니다.


동물원장이자 사육사인 얀 자빈스키와 그의 아내 안토니나는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야생과 같은 환경으로 조성된 바르샤바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물과 교감에 능한 안토니나는 ‘사람이 동물과 보다 긴밀히 연결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동물도 인간과 친구가 되길 바란다고,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갈망한다고 확신’합니다. 다행히 깨어있던 이 부부는 나치를 문제로 판단하였고 동물원을 은신처 삼아 유대인을 살리는 일로 나치에 맞서기로 합니다. 동물원에서 돼지를 길러 독일군에 제공할 고기를 생산하기로 하고 돼지에게 줄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하러 게토를 오가며 유대인 즉, 손님을 빼냅니다. 사람을 감추는 가장 좋은 위장전술은 더욱 많은 사람과 섞이게 하는 것이라며, 부부는 계속해서 합법적인 방문자들을 초대합니다. 닭, 토끼, 개, 고양이, 햄스터, 여우, 오소리, 새, 말, 소, 코끼리, 곰 등, 용케 살아남아준 동물들을 데려오면서 300여 명의 유대인을 동물원에 숨겨줍니다. 부부는 나치에 항거하는 지하운동 조직원과 유대인 도망자들을 동물원에 숨겨주고 탈출을 돕습니다. 그들은 우리에 숨어 사는 이들에게 “표범”, “호랑이” 등의 별명을 붙여주고 멀쩡한 사람들이 동물로 불리는 상황에 동물원은 암호명 <미친 별 아래 집>으로 불립니다. 사람과 동물의 이름 사이 구분이 사라지고 전쟁의 잔혹함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최호의 보루로 남아 1945년 1월 독일군이 철수할 때까지 폴란드 판 노아의 방주였던 동물원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P : 이들을 감춰주는 것이 위험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생명체를 감추는 적절한 위장전술을 고안해 내는 데 동물원 사육사보다 능한 자가 있겠는가?


P : 동물원 주변에는 여전히 나무와 새와 정원이 있었고, 향긋한 린넨 꽃들이 향낭처럼 주렁주렁 달린 고운 풍경이 펼쳐졌다. 날이 저물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하루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러한 감각의 어우러짐은 나치의 소름 끼치는 만행을 경험한 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손님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 되었다.



다이앤 애커먼은 과학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총, 균, 쇠>의 작가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미국 시인이자 박물학자인 작가를 두고 “뛰어난 묘사, 끝없이 샘솟는 통찰, 불굴의 낙천성으로 국보 반열에 오른 일급 저자”라고 평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인문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을 고루 갖추어진 사람으로 좋은 점은 설명 대신 이야기하는 문체로 어떤 무거운 주제든 누구나 손쉽게 만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휘를 사용해 문제들을 해결한다. ‘문제’라는 어휘를 제공하는 언어가 필연적으로 ‘해결’이라는 어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라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쉬운 말로 쓰인 비범한 문장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진부한 표현이 없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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