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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04. 2023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

by 스콧 피츠제럴드

아마도 그가 단편을 많이 쓴 이유에는 헤밍웨이의 성공이 한몫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개츠비> 이후로 사람들은 피츠제럴드가 하락세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반대로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외모나 문체만큼이나 심성조차 여리여리했던 그는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헤밍웨이와의 관계마저 파탄 났다고들 이야기했지만 그런 이야기가 세간에 나온 이후부터 그가 죽기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저 피츠제럴드는 조용히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나와 비상하기를 기다렸고 장편을 고집하던 헤밍웨이와 다르게 단편들도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아니 그 이후 70년이 지나도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에 그는 말년에는 실패한 사람으로 많이들 기억합니다. 단편이 인정받지 못했던 증거는 보르헤스의 노벨문학상 실패와 2011년 앨리스 먼로가 처음으로 단편소설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걸로 알 수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모든 면에서 연약하고 수용하는 성격이었지만 글만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저는 연신 박수를 쳤습니다. 이 책에는 그의 고집이 있는 몇 안 되는 단편집입니다. 당시 작가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많이 기고했는데 피츠제럴드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나 <에스콰이어> 등의 잡지에 싣기 위해 썼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실제로 실린 작품들은 한 두 편에 지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찾으러 수십 년을 할애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 책을 만든 앤 마거릿 대니얼이 그 노력을 대신했고 편집자에 의해 고쳐지기를 원치 않아 끝내 발표되지 않았던 단편들과 심지어 컵받침과 레스토랑 메뉴판에 휘갈기듯 남긴 메모들부터 육필 원고와 평론가들의 서평까지 모두 찾아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편집자가 미발표 육필원고와 타이핑된 여러 사본 중에서 최종본이라고 확증된 작품 18편이 있습니다.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매 작품 앞에 해당 작품이 어떻게 쓰이게 됐는지 소개하는 편집자의 글이 붙어 있습니다. 작가가 의미한 것과 관련 있는 장소, 특정한 사건, 상황, 인물과 작가와의 관계 등을 편집자가 직접 주석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악몽>,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침묵의 땅에 몰아친 폭풍> 에는 아내가 입원한 요양소를 불안한 마음으로 오가던 시절의 상황과 그 당시의 인물들이 반영되어 있고 의사와 간호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작가 부부에게 끊임없이 이어진 질병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아프다>라는 작품은 피츠제럴드가 할리우드에서 다른 작가 작품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던 시절에 쓴 것인데 영화화를 바라며 쓴 그의 유일한 오리지널 시나리오이기도 합니다. 피츠제럴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사진 40장이 실려있고 아내 젤다, 에이전트인 해럴드 오버,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 등과 주고받은 편지도 함께 실려 있어서 피츠제럴드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큰 선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P 첫 문장 : 위에 있는 건 내 본명이 아니다 -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내게 이야기를 쓰도록 허락해 준 것이다.


P : 사랑하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남녀를 떼어놓게 된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자책하며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 팁과 조시는 두 개의 플랫폼에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앞선 객차들이 마음이라도 먹은 듯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P : 로저는 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는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유용하고 가치 있는 것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별빛으로 인식되고, 100미터쯤 떨어진 방에서 편히 잠든 애틀랜타를 생각하면 잘된 일이었다.



제가 피츠제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시적인 인기나 문학적 유행과 타협하지 않은 그만의 세계가 있어서입니다. 그의 글을 인용해서 말을 하면 글 안에서 만큼은 그는 그의 삶을 살았고, 그의 밤이 비록 후회로 가득할지라도 글에서 만큼은 피츠제럴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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