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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11. 2023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by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책을 좋아하던 친구가 제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선물로 주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저는 별로 안 좋아할 거라는 말을 하며 건넨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책장에서 눈에 띄어도 잘 집어지지가 않았고 덩그러니 영어 원본과 번역본이 나란히 진열만 되어 있었습니다. 십 년 전쯤 서른이 되기 전 읽기로 마음을 먹고 책상에 기대고 첫 장을 읽어 내려갔고 밤을 새우고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억이 있습니다. 늦게 만난 걸 후회하며, 외로움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였던 그 책은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주는 그 느낌이 좋으면서도 슬펐던 인생 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을 미친 듯이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소설책은 4권뿐이었고 가장 마지막 발표작인 이 책은 1963년에 출간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어떠한 책도 발표하지 않고 은둔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책에는 사실 1955년 작인 표제작과 1959년 작인 <시모어:서문>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제외한 나머지 3권의 책에는 공통점이 하나가 있는데 “글라스”라는 성을 가진 가족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표제작에서는 글래스가의 일곱 남매 중 장남 시모어와 둘째 버디가 등장합니다. 군 복무 중이던 버디는 천재 시인인 형 시모어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뉴욕에 오는데 형은 식장에 나타나지 않고 버디는 신부 친척들의 분노를 떠안게 됩니다. 나중에 버디는 형이 신부와 여행을 떠났음을 알게 되고 형의 심경을 담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샐린저는 시모어가 신부 친척들로부터 잠재적 동성애자, 분열적 성격으로 매도되는 장면을 통해 사회 부적응적인 인간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냉랭함을 생생히 드러내는데 지금이랑 달라지지 않은 현실적인 모습에 기분이 묘했습니다.


<시모어:서문> 은 세월이 흘러 마흔 살이 된 버디가 오래전 자살한 시모어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표제작은 샐린저 특유의 경쾌한 대사가 생생하다면 두 번째 작품은 버디의 긴 독백으로 이루어져서 <프래니와 주이>를 연상시키는데 오히려 읽기는 조금 불편해도 이 모습이 샐린저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서 좋았습니다.



P : 자살한 시인이나 예술가는 한배에서 나온 짐승 새끼들 가운데 귀가 가장 보드라운 놈이나 되는 것처럼 늘 탐욕스러운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예전에 <프래니와 주이>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책에는 작가 사진이나 출생지 또는 학력 같은 작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다고 말씀 들었는데 그의 모든 책이 그러합니다. 보통 번역에도 흔히 붙는 역자 후기나 작품 해설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샐린저가 내건 출판 조건 때문인데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한다. “고 믿는 그는 표지에 그림을 넣는 것뿐만 아니라 요란한 디자인도 싫어했기 때문에 국내 출판사 측은 출간 전 표지 디자인을 미국에 보내 샐린저 에이전시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9개의 이야기>의 영어 제목 중 “o”자를 태양 모양을 본떠 디자인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두 손가락만 이용하는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가 아닌 낡은 수동 타자기를 두들기며 글을 썼습니다. 글은 꾸준히 쓰고 있었고 딸 마거릿에 따르면 표지 색깔별로 원고 뭉치를 구분한 뒤 각각 원고를 일절 손질하지 말고 사후에 출판할 것을 조건으로 남겨주었습니다. 2010년 그가 죽은 수 그의 책이 나올 거라 이야기했고 2014년에 <Three early stories>라는 책 한 권만 나오고 아직 다른 책들은 출간되지 않았습니다.(국내 번역은 아직 안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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