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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27. 2023

소망 없는 불행

by 페터 한트케

썼다 지웠다 하는 노트에는 마무리하지 못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와 최인호 작가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연속으로 읽고 난 후부터 제 노트에서 어머니는 그렇게 소재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번쯤 써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트케의 이 책을 통해 내가 만약에 정말로 어머니라는 소재로 글을 완성한다면 결말이나 과정은 이렇지 않더라도 이 책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어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사실 더없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 큰 거리감을 두고 한 여자의 상처 많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어렵게 다가왔지만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은 저로서는 여러 의미에서 이 책은 저에게 공감과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 이렇게 2편의 이야기로 묶여 있습니다. <소망 없는 불행> 은 저자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아이 이야기>는 저자의 딸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한편으로는 타인의 이야기처럼 풀어냅니다. 문장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데 내용은 무척이나 격정적입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어머니는 끝없이 외로운 삶을 감내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럽의 좁고 기다란 골목 사이의 어둡고 추운 바람이 느껴지는 겨울 날씨가 전반적으로 느껴집니다. 문화적인, 시대적인 부분을 이해하려 하면서 아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거기에 작가 의식이 투철한 한 인간이 써 내려간 글이라는 걸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감히 한 사람의 일생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화자가 자식이라 할지라도 객관적 시선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조차 느낄 수 없는 먹구름 같은 짙은 회색빛으로 이야기합니다. 한 인간에 대한 감정을 제거하고 심히 이성적이라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과연 자신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냉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성적으로 몰입하려 하는 자신을 작가로서 엄히 다스리며 글쓰기에 임하는 한트케의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읽으라는 번역가님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작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었기에, 독자로서는 나를 대입하기가 더 쉬웠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객관적인데 읽는 저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이 이야기>는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오고 아이가 생긴 삶에 적응하고 아이를 길러 내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P : 경악의 순간들은 언제나 아주 잠깐이고, 그 잠깐이란 시간은 경악의 순간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현실의 감정들이 미치는 순간이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시 모른 체해버릴 순간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되면, 마치 지금 막 그에게 불손하게 굴기나 한 것처럼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P : 난 항상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좀 약해지고 싶었단다.


한트케의 어머니는 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책은 그 후 써진 산문으로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한트케가 쓴 글입니다. 배우지 못했고 늘 외로워 그런 선택을 한 어머니를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찰하고 기록하였고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이 책에 관해 그는 아들이 말하는 엄마의 삶이 아들인 자신이 엄마의 삶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고 제목이 <소망 없는 불행>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언어 없는 불행이었기에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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