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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14. 2023

보통의 존재

by 이석원

고3 때, 저와 친구는 제 생일을 핑계로 가장 핫하다는 홍대로 야자를 빼먹고 도망을 나왔습니다. 신림동 촌놈들이 본 홍대는 그야말로 신세계였고 제 친구는 용돈을 모아서 제 생일 선물로 <드럭>이라는 클럽을 데려가 주었습니다. 당시 고3들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판사를 하는 그 친구의 말빨로 어찌어찌해서 공연장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밴드들의 공연을 보았고 그 젊음의 열기에 취해 기분이 들떠 있었습니다. 친구와 공연장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언니네 이발관>을 이야기하며 나중에 CD를 사자고 하였습니다. 그해 수능이 끝나고 저는 그 친구 생일에 <언니네 이발관> 앨범 두장을 선물해 주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후 그 친구의 택배를 딱 한번 받았는데 그 택배 안에는 이 책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일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언니네 이발관>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이석원 작가님은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왜 웃고 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며 자신의 일상을 들려주었고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 볼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선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자신을 특별할 것 없는 존재라고 소개하며 어린 나이에 한 결혼과 헤어짐까지 너무나 담담하게 읊조리듯이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자조 섞인 듯 허를 찌르는 웃음도 곁들여 가며 노래를 하는 듯 글은 자신의 연애 이야기 말고도 인생 이야기로도 가득 차 있습니다. 서랍에서 소중하게 꺼내보는 듯한 유년 시절의 추억과 어른이 돼서 서글퍼지는 순간들, 그리고 산책과 음악이야기, 꿈, 부모님과 친구, 조카 이야기 등 우리들이 흔히 겪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 책 안에 있습니다. 가장 좋았던 거는 아무래도 좋아하는 가수 이소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수들이 콘서트를 하게 되면 며칠 연속으로 길게는 일주일 이상 전국투어 공연을 하는데 한 콘서트에 모든 것을 쏟아붓게 되면 다음날 공연에 지장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소라 님이 그걸 모를 리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 무대에 감정을 터트려 분출시켜 목소리로 토해내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는데 경외심마저 들었습니다.


그의 삶은 고요해 보였지만 고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탄식하는듯한 글들이 보입니다. 한 번에 쭈우욱 읽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다시 책을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자포자기하는 듯한 글에는 신기하게도 불평불만 없이, 그렇다고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절망과 슬픔의 변주를 연주하듯 사람들과의 인연을 너무 아름답게 풀어내는데 종종 마음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음산하게 그렇지만 긴 터널 속을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하듯이 가까스로 본인을 움직이며 빠져나가려는 거 같았습니다.



P : 사랑이 뭘까. 마음은 왜 변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그 애를 생각하면 문정동 어느 작은 공원 문 앞에 걸터앉은 채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랑한 그녀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연민이건 무엇이건 상관없다. 설사 그게 사랑이 아니라 해도 사랑보다 중요하지 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P : 끝의 덧없음을 깨닫지 않으리. 힘들더라도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해 끝과 마주하고 싶을 뿐.


P : 현실에서의 표류자는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서 구원을 찾는다고 했던가. 내겐 그것이 책 읽기였고 여행이었던 것이다.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중



새벽에 이 가사가 귀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 밴드, 이 작가님이 살면서 겪게 되는 보통의 이야기는 쓸쓸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안을 전하는 거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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