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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15. 2023

작가 수첩 1

by 알베르 카뮈

저는 아직도 종이에 무엇인가를 쓰는 거를 좋아합니다. 핸드폰으로 간단한 메모를 하기도 하지만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걷다가 조금 지칠 때 즈음,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시킨 후 노트를 펼칩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나오면 옮겨 적기도 하고 생각할 무엇인가를 던져준다면 그 물음에 나름의 답을 적어보기도 합니다. 한 줄 한 줄 채워져 가는 노트를 볼 때마다 엉망진창인 글씨체와 서로 어우러지지 않은 문장들로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채워진다는 안도감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제가 무엇인가를 쓰는 날이 온다면 이 노트들과 흔적을 남기고 있는 이곳을 참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까뮈는 1935년부터 죽는 날(53년)까지 카뮈 자신이 공책이라고 부르던 것에 꾸준히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직접 적기도 하였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타자기에 옮기기도 했고 사후에 발견된 것에는 노트와 타이핑된 사본 한부를 따로 작성해 놓았습니다. 총 7권인 이 공책을 묶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세 권의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부분은 1권에 해당되는 1935년 5월부터 1942년 2월까지의 기록입니다.


이 시기의 공책을 보면 일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호하게 몇 가지 문장들로만 간단하게 옮겨 적어놓았습니다. <안과 겉>에서 <결혼>과 <시지프 신화>를 거쳐 <이방인>에 이르는 작품들의 창작을 동반했던 성찰들의 모습들이 이 안에 있고 이 공책을 읽고 작품들을 만났다면 내용들이 납득이 될 만큼 충분할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의 모티브로 엿보이는 기록들과 본인만 알 수 있게끔, 그리고 어떤 문장은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록들도 엿보입니다. 감수성 예민한 한 철학도가 작가로 탈바꿈해 가는 과정과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기에 꾸밈없이 적어 놓았습니다. 더러는 왜 이렇게 썼을지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해독이 필요한 문장들을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과 연관 지어 보면서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매우 시적이고 깊이가 있어서 이해가 쉽지는 않지만 두세 번 읽어보면 와닿는 문장들이 참 많습니다.



P :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거기에 쓰인다. 인간성도, 진실도 그런데 내가 곧 이 세계일 때보다도 내가 더 진정하고 더 투명해지는 때란 언제일까?


P : 내면 속에서 느끼는 이 슬픔 속에서조차도 사랑하고 싶은 욕망은 얼마나 강렬한가. 저녁 공기 속에서조차 산 언덕을 바라보기만 해도 얼마나 큰 도취감에 젖는가?


P :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심을 버리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어떤 종류의 포기, 다시 쓰기. 어떤 종류의 것이건 일정한 수확을 가져다주는 노력,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나태의 문제.


P : 살고 그리고 창조해야 한다. 눈물이 나도록 살아야 한다.



카뮈의 공책들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까뮈의 부인과 장 그르니에, 르네 샤르 제씨가 이 책의 발간에 동의가 있어서였습니다. 그의 공책은 1971년에 출간된 미발표 소설 <행복한 죽음>에 덧붙여 나온 것을 시작으로 1994년의 <최초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7권이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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