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든 걸 내려놓을 준비를 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저승의 창문이 크게 느껴질 때, 그녀는 문득 이승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마다 필사적으로 펜을 부여잡고 무언가를 쓰려했습니다. 몸도 마음대로 듣지 않고 호흡조차 가빠올 때 즈음, 그녀는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무언가를 쓰는 걸로 확인하려 했던 거 같습니다. 글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펜은 그녀의 손에서 굴러 떨어졌고 또 혼수상태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흰 종이에 그녀가 남길 수 있었던 문장은 고작 3~4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문장은 그녀의 숨소리처럼 짧고 가쁩니다. 다시 의식이 회복되면 그녀는 여전히 펜을 움켜쥐었고 그런 식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기록한 마지막 작품이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얇은 이 책입니다.
이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입니다.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살만한 이 책은 죽음 앞에서 어땠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적어도 그녀는 죽음에 굴복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프랑스나 세계 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잘 읽히지 않고 있다가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으로 친숙해진 작가였습니다. 그녀는 나치에 가열한 저항과 5월 혁명의 선봉에 섰던 모습은 사실 우리들에게 소상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파격적이면서 고통스럽고, 격정적이면서 자유스러운 삶을 살아온 그녀가 83살의 나이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의 모습을 이 책에서 담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인상적인 작품은 그 점을 잘 보여줍니다. 지나온 삶을 갑자기 통째로 후회하지도 않고, 절대자에게 내세를 기대하지도 않으며, 두려움으로 지레 겁먹지도 않는 뒤라스의 한결같은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책 한 권을 쓸 거라며 펜을 움켜쥐었던 그녀에게 결코 삶을 통속적으로 살지 않았다는 자신감과 글을 쓰며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작가에게 창작의 신성함을 일깨우려는 무서운 의지조차 엿볼 수 있습니다.
P : 침묵, 그러고 나서.
죽을 때까지 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너무 일찍 죽지 않도록 힘써볼게요.
내가 해야 할 건 그것뿐이에요.
P : 11월 21일 오후, 생브누아 거리
Y.A. : 당신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하겠어요?
M.D. : 뒤라스라고.
Y.A. : 나에 대해선 뭐라고 하겠어요?
M.D. : 알 수 없다고.
P : 죽을 때까지 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너무 일찍 죽지 않도록 힘써볼게요.
내가 해야 할 건 그것뿐이에요.
그녀는 하고 싶은 말들을 과연 다 하였을까요? 이게 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하지만 왠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년에 사랑했던 얀을 향해 사랑을 부르짖기도 하고 당연한 죽음인데도 불구하고 죽음 속으로 뛰어들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며 안타까워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