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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22. 2023

크로이체르 소나타

by 톨스토이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클래식 음악이 종종 제 눈에 띄는데 오늘은 몇 개월 전에 손열음 님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님과 함께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를 연주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한수진 님의 멋진 공연까지 연이어 보게 되었는데 클래식이나 바이올린을 잘 몰라도 멋진 연주를 집에서나마 볼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며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집중하며 들은 음악은, 처음에 조심스럽게 한 음 한 음을 깊게 눌러 연주하며 서로에게 망설이듯 다가서는 두 대의 악기는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는가 싶다가도 남남처럼 한 치의 틈도 보여주지 않은 듯합니다. 날카롭게 이어지는 바이올린 선율과 피아노는 음을 짧게 연주하는 방식으로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며 신경질적인 공포감마저 조성합니다. 빠르고 거칠게 튀어나오는 바이올린 선율을 광폭한 느낌의 피아노가 맞서는 듯했는데 톨스토이는 이 음악을 듣고 위험한 금기 소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책은 이 음악을 토대로 만든 음악극입니다. 30대 젊은 베토벤이 쓴 음악을 들은 60대의 톨스토이는 음악에서 무엇을 보았을지 궁금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곡을 듣고 음악이 사람의 정신에 주는 악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음악을 윤리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질주하는 객차 안에서 남자 주인공인 포즈드니셰프는 아내가 바이올린 연주자와 바람을 피워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살해한 이야기를 회상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파국을 맞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차갑게 이야기해 나갑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와 바이올린 연주자가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하는 장면을 회상하며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화려하고 긴박하게 연주하는 것을 마치 남녀의 정사처럼 표현합니다. 음악적 교감만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확신하는 질투 가득한 불신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자신은 비도덕적인 삶을 살면서 아내에게는 정숙함을 요구하며 성적 대상으로 삼는 부조화와 사랑을 믿지 않고 의심만 키워나가는 삭막한 현실 등을 톨스토이는 음악에서 느낀 듯했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질주하듯 절정에 다다르고 극적인 마무리를 하며 음악은 끝이 납니다. 대부분의 소나타 연주곡이 특정 악기 하나가 주를 이룬다면 이 곡은 두 악기가 같은 비중으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특이합니다.



P :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그는 소리쳤다. “으……!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한 음악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니 음악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게 도대체 뭔가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악이 도대체 뭐지요? 음악이 하는 일이 뭡니까? 왜 그런 일을 하는 겁니까? 음악이 영혼을 고양한다고 하는 말은 모두 헛소리이고 거짓입니다! 음악은 무서운 작용을 합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베토벤이 당시 프랑스 출신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크로이체르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라고 이름이 붙였는데 크로이체르는 이 곡이 난폭한 곡이라고 하대해 평생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도 사연이 있는데 집필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이 책은 한동안 출판 금지가 되었고 미국 출판 시장에서는 논의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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