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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29. 2023

전락

알베르 카뮈

너무나 신랄하고 회의적이라는 이유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이 작품은, 적어도 저에게는 카뮈의 세계에 빠져들어 밤을 새 가며 읽었던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듯한 주인공 클라망스의 달변을 듣는 청중으로 다가가다, 어느 순간 읽다 보면 그의 입을 빌려 말하는 화자가 저라고 생각이 들어 글 속으로 녹아들게 되었습니다. 비난과 공감과 위로를 동시다발적으로 퍼붓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제 안의 열등감도 함께 덮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몸살로 움직이지도 못하다 엄청 아픈 주사를 맞고 온몸이 가벼워지면서 후련해지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클라망스는 파리에서 명망이 높던 변호사로 수려한 용모와 명망 있는 태도, 탁월한 언변과 화술로 법조계와 사교계를 주름잡는 멋진 남자이고 스스로도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던 인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센강 다리 위에서 한 여자가 슬피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순간 그녀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뒤에 일어날 여러 귀찮은 일로 피곤해질 것을 예상해 결국 외면합니다. 이윽고 그녀는 몸을 강으로 던집니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혹은 울려왔던 목소리가 비로소 그의 귓가를 맴돌게 되고 뇌를 세차게 흔들게 된 것입니다. 클라망스는 자신의 부조리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의 각종 부조리에 대해 떠올리며 이에 대해 거세게, 자조적으로 반항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절정에는 환희에 찬 비탄을 내뱉으며 마치 저를 향해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클라망스는 자신을 재판함과 동시에 저의 죄에도 판결을 내려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목이 내려쳐진 듯한 오싹함 속에서 새롭게 타오르는 불꽃을 만날 수 있었는데 자신의 허영심이나 열등감에 잡아먹혀 재판을 기다리며 암스테르담으로 숨어든 클라망스처럼 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P: 그러니 선생께서 나를 체포해 보시죠. 훌륭한 데뷔 작품이 될 겁니다. 아마 그 뒷일은 맡아해 줄 사람이 있을 테죠. 가령 나는 목이 잘리게 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일도 없어질 테니 구원받는 셈입니다. 그러면 선생께선 운집한 군중들 저 위로 이제 막 잘린 내 머리를 쳐들어 올려주십시오. 내 모습 속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더 내가 모범이 되어 그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카뮈는 우리의 위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클라망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입니다. 물론 클라망스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은 아닙니다. 제 자신이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책을 읽고 나면 한결 편해집니다. 아마도 모순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리라 감히 짐작해 봅니다. 이상하게도 클라망스의 전락은 저의 열등감으로부터의 구출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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