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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06. 2023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by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제가 좋아하는 이 작가는 2.5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소설집 그리고 3권의 산문집을 남기고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5편인 이유는 세 번째 소설은 그가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 상태로 유작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은 그의 세 산문집에 실린 총 32편의 글 중 9편 만을 골라 엮은 것입니다. (모두 실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보다 우리 시대에 소설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견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늘 분석적이었던 월리스는 소설 이론에 관심이 많았고 여러 인터뷰와 산문에서 소설에 관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소설은 이 세상에서 빌어먹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망할 세상을 그대로 반영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고 그 질곡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따라서 정통적 사실주의도, 아이러니로 현실을 꼬집기만 하는 태도도 부족하고 그는 분절된 경험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반영하되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초월하여 진실되고 도덕적인 주장을 펼칠 줄 아는 픽션이기를 바랐습니다.


월리스는 출간을 염두에 두고 자발적으로 주제를 정해 논픽션을 쓴 적은 없습니다. 처음 문예지에 글을 쓴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고, 나중에도 잡지나 신문이 의뢰를 해오면 썼습니다. 그의 논픽션이 주목받은 계기는 <하퍼스>의 의뢰로 일리노이 주 축제를 구경한 뒤 쓴 기사였고 이후 잡지들은 그를 포르노 컨벤션, 크루즈 여행, 존 매케인 선거 캠프,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 촬영 현장, US 오픈 테니스장 등등으로 파견하여 지극히 미국적인 행사를 지극히 미국적인 작가인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고 그래서 나온 첫 산문집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독자들은 천재적이고 괴팍한 이 작가가 나를 드러내어 말하는 논픽션을 좀 더 편하게 느꼈고, 그 또한 논픽션에 자신의 장점이 잘 살아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에는 그가 세 개의 산문집의 표제작이 담겨 있습니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랍스터를 생각해봐>,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세 편이며 비평 중에서는 맨 처음 발표된 글이었던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에서 카프카와 도스토옙스키를 다룬 글이 실려있습니다. 장문의 글을 쓰다 보니 9편만 실어도 이미 한 권 분량이 되어(470페이지) 누락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쉬웠던 글 중에 2000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선거 캠페인을 취재한 <업, 심바!>라는 글이 빠진 것입니다. 이 글로 저널리즘 상도 받았기 때문에 실리지 못한 것이 더더욱 아쉬웠습니다.



P : 인간이 자신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미리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면, 인간은 또한 부정할 수 없고 중요한 그 진실을 지속적으로 부정하는 데 기꺼이 몰두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P : 천재성은 복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감은 전염되고, 그것도 여러 형태로 전염된다. 그리고 힘과 공격성이 아름다움 앞에서 취약해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영감을 느끼고 (필멸하는 인간의 덧없는 방식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저는 이 책의 표제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만큼 짜릿한 글을 오랜만에 봤습니다. 자신의 뇌에 갇힌 헛똑똑이 백인 남자가 좋아하지도 않는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매사를 비딱하게 기록한 일기를 읽으며 웃고 눈물이 고이고 그를 비웃고 그를 동정하고 공감도 많이 하였습니다. 월리스는 좋은 글은 독자가 덜 외롭게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을 때 빠져들어 외로울 겨를이 없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미치코 카쿠타니는 월리스의 부고에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웃기게 쓸 수 있었고, 슬프게 쓸 수 있었고, 냉소적으로 쓸 수 있었고, 진지하게도 쓸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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