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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11. 2023

마그누스

by 실비 제르맹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면 운석 한 조각에서 우주의 기원과 관련된 사실을 유추하는 장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뼈 한 조각에서 선사시대 동물의 골격과 생김새를 끌어내고, 식물의 화석을 통해서는 오늘날 사막이 되어버린 지대에 한 때는 풍성했을 생명들이 존재했음을 추측해 보게 됩니다. 태고에 어떤 이가 말해주는 것처럼 미미하고도 끈질긴 흔적들이 수 없이 남아 있음을 우리는 그들이 찾아낸 단상들에 의해 알 수 있습니다. 파피루스나 도기 한 조각을 보며, 수천 년 전 사라진 어떤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한 단어의 어근에서 출발해 수많은 파생어와 의미를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수수께끼를 풀려면 상상력과 직관이 필요한 듯합니다.



P 프롤로그 : 글을 쓴다는 것은 프롬프터 박스로 내려가, 단어들 사이 혹은 주위에서 때로는 단어들 한복판에서 언어가 침묵하며 숨 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부르크에 가해진 대규모 폭격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실한 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마치 고고학자처럼 자신을 찾으러 가는 여행에서 밖으로는 역사의 비극을 볼 수 있고 안으로는 성장해 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에게 저질러진 불의와 폭력,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문제를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저는 그저 주변의 문제들이 아닌 한 아이가 눈에 계속 들어왔습니다.


함부르크에 폭격이 가해지던 날 5살 프란츠는 엄마와 함께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화재가 덮치는 걸 보며 자리를 피하게 되었고 손에 쥔 것은 곰인형 마그누스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이 아이는 기억을 잃어버렸고 고아원에서 지냅니다. 테아라는 입양할 엄마는 백지상태의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고 자신의 뜻대로 키우기에 기억이 없는 편이 좋았습니다. 다행히 테아의 바람대로 소년은 입양한 부모들이 친부모인 줄 알고 자랍니다. 그렇기에 엄마 테아에게 있어 마그누스는 버리고 싶은 인형이었을 것이고 프란츠에게는 무언지 모르지만 놓으면 안 되는 정체성이었습니다.



P  첫 문장 : 적절한 때에 말해지지 않은 것은 순전한 허구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명상을 좋아하는 프란츠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서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잘 표현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환경에 익숙해집니다. 기억은 없는 것이 아니라 못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었고, 명상이 좋았던 것은 그런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그시 끝까지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그때는 몰랐던 것이 머릿속에서 사진처럼 남아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그 장면들은 대체로 자신이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엄마는 아들이 이 끔찍한 장면들에 맞설 수 있게 돕거나 무어라 설명해주지 않을뿐더러 언급을 일절 거부합니다. 아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가하며 사고를 마비시키고 산산조각 내는 장면들을 앞에 두고 악착같이 사실을 부정합니다. 심지어 이런 정보들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사진들을 속임수라 비난하고 원한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정 지어 버립니다.



P : 백색 혹은 회청색 목소리의 단어들이 행렬을 짓는다. 황톳빛 혹은 보랏빛 웃음소리와, 상아색과 등황색 숨결이 깃든 단어들이다. 각각의 이름이 고유의 혈색과 외양과 음색을 지닌 채 가볍게 떨린다. 간혹 불규칙한 진동이 전해져오기도 한다. 저마다 자신만의 광채와 독특한 울림을 지닌다. 때로 한 차례 서광처럼 번쩍인다. 행렬이 돌고 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이름은 부재한다.


P : 그는 걷고 또 걷는다. 매 걸음 불순물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사고가 명확해진다.



마그누스의 삶은 유괴당한 듯했습니다. 단절된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조금씩 맞춰지면서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무엇은 언급하지 않고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게끔 그림을 그리도록 우리에게 붓을 건네주는 듯했습니다. 아름답고 안쓰럽던 마그누스가 평안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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