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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21. 2023

밤은 고요하리라

by 로맹 가리

로맹 가리를 생각하면 꿈을 꾸는 것 같은 눈빛에 움푹 들어가 있는 큰 눈과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시니컬한 입매, 그리고 그 입에 물려 있는 시가가 떠오릅니다. 유럽식으로 재단된 멋진 정장과 꾸민 듯 안 꾸민듯한 헤어스타일을 한 채 카페에 앉아 길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트에 무엇인가를 끄적이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가 끄적이던 노트에는 지금 현실에 발은 내딛고는 있지만 언제나 우리들에게 더 나은 내일이 다가오기를 평생 동안 상상해 온 것들을 글로서 만들어내고 있을 거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떠나는 순간에도 자신의 끝을 두 눈에 담고자 했는지 그 큰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그의 죽음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새벽의 약속>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인데 그 책이 어머니를 위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의 아들을 위한 작품이었습니다. 로맹 가리의 유년시절은 어머니의 그늘에 조금은 부담스러웠을지 모르는 삶이었지만 그가 느끼는 삶은 언제나 어머니라는 빛으로 채워진 밝은 세상이었습니다. 태양 빛이 생명들을 길러내고 곡식과 열매를 익히는 과정처럼 로맹 가리는 그 자신을 길러낸 빛이 어머니였으며 그 안에서 행복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고백합니다.


그는 써온 작품들을 자신의 소산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스스로를 이야기합니다. 빛이 드러내는 모든 경계를 어둠으로 덮어서 그 경계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블랙홀처럼 그는 자신의 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자연을, 또 사람과 우주를 연결하는 열린 공간이기를 꿈꿔왔습니다. 하지만 대중이나 문화계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의 작품들의 평가는 언제나 작품 속에 로맹 가리를 대입하는 식이어서 로맹 가리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작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글입니다. 그의 친구였던 기자 겸 작가인 프랑수아 봉디가 격의 없이 질문하고 답을 하며 개인적인 것부터 그가 지켜봐 온 문학이나 인물, 그리고 당시 사회의 문제점까지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듯 편하게 나눕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이 책을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이 읽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인슐린 쇼크로 수 없이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자신의 어린 자식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차례 계단을 오르내리고 최후의 마지막까지 참전 중인 아들에게 전할 수년 분량의 편지를 썼던 것처럼 그도 아들을 위해 매일 일곱 시간씩 규칙적으로 글을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이 살아갈 삶에 무언가가 따스한 온기로 남기를 바랐던 로맹 가리의 부정이 낳은 책입니다.

 


P : 내가 나를 쓰레기로 여긴다면 확실히 쓰레기가 되지.


P : 세상을 어깨에 짊어진 아틀라스가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건 그가 춤꾼이었기 때문이라고 내가 어딘가에 썼지. 라블레가 “웃음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고통에 대해 말한 거네.


P  : 프랑수아 봉디 - 정치에 관여하는 동안 자네에게 가장 충격을 준 건 무엇이었나?

로맹 가리 - 누구도 정말로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지.



로맹 가리의 삶은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어머니의 해피엔드가 돼야 했기에 스스로 어머니의 이상향이 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어머니가 슬퍼할 때면 어린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창 밖의 높은 곳을 큰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행동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을 위로하고 감싸안는 마음이 자라나 결실을 맺은 것이 그가 써온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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