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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26. 202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y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을 살다 보면 늘 암초를 한 번쯤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인생의 스승이 한 명쯤 있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같은 생각이나, 하고자 했던 결심들이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릴 수 있는 불확실성에서 괴로워하기도 했고 차라리 누가 정답을 알려준다면 그렇게 이해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일상적인 일들도 하루하루 다른 의미가 있고 그 생각들을 곱씹어 보면 그때마다 달라졌기에 그러했던 거 같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에 발을 살포시 내딛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저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이 한 명 있어서 그 사람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카푸스라는 한 젊은 시인 지망생이 있었습니다. 군인 학교를 졸업하고 시인이 되고자 했던 그는 유명한 시인에게 자신의 시를 평가를 받고자 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이란 시를 쓴 릴케에게 자신의 시를 보냅니다. 자신의 작품과 더불어 자신이 이해받기를 바라서 주절주절 쓴 긴 편지도 같이 보내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팬이라며 자신의 작품과 인생을 늘어놓았다면 저는 아마 답장을 안 했을 거 같습니다.


당황했을 법한 상황에서 상냥한 릴케는 아름답고 정확한 글자로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라. 그러면 당신의 고독은 당신을 스쳐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답장을 합니다. 이후로 그들은 5년간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카푸스는 후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릴케의 창작세계에 대한 이해와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이 편지들을 묶어서 발표합니다. 이 책은 작가 지망생뿐만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을 젊은 사람들에게 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가볍고 간결한 문장들이 환영받는 요즘, 애써 정확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의 무게를 가늠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비칠 수 있습니다. 그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도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문장을 기다리듯 때를 기다리고 쓰다 지우고를  반복하다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엉망이 된 문단들을 처음부터 다시 쓰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미완성의 작품과 하루하루 고민하는 나날들을 릴케의 말을 빌려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 하며 살면 될 거 같습니다. 적절한 깊이의 단어와 문장은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올 수 있으니 자신만의 길을 계속 걸어가라고 그가 말하는 거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릴케의 말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인생은 옳다” 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면 될 거 같습니다.



P : 고독을 사랑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로 참고 견디십시오.


P : 노인들에게 충고를 바라거나, 이해를 구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당신을 위해 쌓인 사랑을 믿고, 그 사랑에 힘과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릴케는 파리에서 지낼 때 매일 친구와 함께 산책을 다녔는데 그가 다니는 산책길의 중간에는 한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할머니의 손안에 동전 몇 개를 얹어놓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릴케의 친구도 할머니에게 자주 돈을 주었지만 릴케는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친구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는 저 할머니의 손에 동전을 줄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에 선물을 줘야 하네.”라고 대답을 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릴케는 혼자서 산책을 했고 미리 준비해 온 하얀 장미꽃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얼굴에는 마치 소녀 같은 해맑은 미소가 번졌고 이내 곧 할머니는 감격해서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젊은이, 고맙소. 내가 이제껏 받아 본 선물 중에 가장 귀한 선물이라오."라고 말하며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해 준 릴케에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릴케에게 다가가 릴케의 볼에 입맞춤을 한 후 그 장미꽃을 들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동안 할머니는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더니 며칠 후 다시 예전처럼 동냥을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동냥을 하지 않고 살았던 며칠 동안 무엇을 먹고살았을지 궁금해했는데 릴케는 “장미의 힘으로 살아갔을 거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손에 쥐어준 하얀 장미꽃 한 송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닌 사랑과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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