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by 무무

조용한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는 책이며 몇 년 전에 이동진 님이 강력 추천하며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서 여러 독서모임에서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왠지 나만 알던 숨은 명곡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기쁘면서도 약간 슬퍼지는(?) 그런 경험을 하였고 저에게는 너무 소중하면서도 특별한 책을 이야기하고 꼭 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거는 예전 버전으로 지금은 표지가 에곤 쉴레의 자기 예언자라는 그림으로 작품으로 예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 책은 원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5년간에 걸쳐 쓴 세 편의 소설, Le Grand(큰 공책, 1986년), La Preuve(증거, 1988년), Le Troisieme Mensonge(세 번째 거짓말, 1991년)에 발간한 책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된 것입니다.


제 책을 기준으로 상편은 읽는 순간부터 충격에 휩싸여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말 그대로 당혹스러웠고 세상의 모든 금기가 아무렇지 않게 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상식, 윤리는 무너져 버렸고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할리 난무하였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문체, 무관심하면서도 건조한 거 같은 시니컬이라는 단어가 제일 와닿는 그녀의 글이 오히려 이런 충격에서 저를 안아 토닥여줍니다.


이러한 충격으로 상권을 읽고 중권으로 바로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너무 아름답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순간 읽고 있으면 눈물이 날 거 같은 뭉클함마저 드는 이 책에서는 국경마을에서의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루카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존재감이 없던 미미한 그들의 존재의 증거를 생기 있게 루카스의 노트 속에 기록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너무 와닿고 어느 순간 이 사람들을 안아주고 싶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이 책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문체는 여전히 건조하며 흑백 필름과 같은 영상을 머릿속에 그려주면서 저는 어느새 국경 근처 작은 시골 마을의 감정에 이입되어 루카스와 마티아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하루나 이틀 추스르고 아마 마지막 권을 맞이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편의 긴장감과 중편의 즐거움을 하편에서는 메시가 공을 차듯 뻥 날려줍니다. 텅 빈 하늘로 끝도 없이 올라가다 실이 뚝 끊어진 연처럼 제 기분이 그러했습니다. 우리에서 루카스 혹은 클라우스로 확실히 분리된 내가 등장하는 마지막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루카스를 완벽히 부정하는 클라우스처럼 차라리 하편이 없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루카스는 돌아가기 전, 클라우스에게 자신의 미완성 소설 원고를 건네고 클라우스는 그 미완성의 소설을 읽고 마지막까지 완성해 내는 모습이 이 책 전체와 닮았습니다. 이 전에 나타난 두 아이들의 잔혹한 일상의 밑그림이 이 부분에서는 그려지고 펼쳐지면서 책이 완성되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책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면서도 저는 때로는 비워놓고 남겨놓는 여백의 그림이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늘 아쉬운 투정을 합니다. 아마 중편을 너무 사랑해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P :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있지요” :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네”

P : 너도 잘 알잖아. 나는 단지 꿈일 뿐이라는 걸. 그걸 받아들여야 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어디에도.

P : “죽은 사람들하고 떠난 사람들하고는 한 가지 차이밖에 없어. 그렇지? 죽지 않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P :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힐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이 책에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소설 속의 국경마을 K시는 작가가 실제로 어린 시절을 보낸 헝가리의 콰세그이며 그녀 역시 어려서 국경을 넘어 자신과 무척이나 가까웠던 오빠와의 생이별을 경험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책 속의 루카스는 작가의 모습일 것이고 클라우스는 그녀 오빠의 모습이라고 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조국과 모국어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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