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by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by 무무

스페인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은 <돈키호테>이고 그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은 이 책이라고 합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움베르토 에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한 번에 조우하는 이 책은 가깝게 느껴지지만 사실 조금 낯선 나라인 스페인에서 날아온 이 매혹적인 이야기인데, 분량이 800쪽에 육박한데도 부담 없이 책장을 한 장씩 넘길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결과적으로 보면 마르케스와 에코와 보르헤스가 훌리안 카락스라면, 작가인 사폰은 다니엘입니다.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알 수 있는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 속에 깃들어 있던 귀신에 들려버린 사람의 이야기들, 그 진실성에 의문을 제시할 수 없고 단지 그것이 스스로 사라지거나 나를 파괴할 때까지 좇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보다 더 선명한 환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1945년 초여름 어느 날 새벽 바르셀로나의 희뿌연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두 부자로 포커스가 맞춰집니다. 카프카에게서 영감 받았다는 복잡하고 신비로운 <잊힌 책들의 묘지>는 하나의 성전으로 표현합니다. "도서관이 하나 사라질 때, 서점 하나가 문을 닫을 때 그리고 책 한 권이 망각 속에서 길을 잃을 때" 그 책들은 반드시 이곳에 도착합니다. 엄숙하고 신성한 <잊힌 책들의 묘지>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책 한 권을 선택해 입양할 수 있는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도착한 소년 다니엘은 훌리안 카락스의 책 <바람의 그림자>를 선택합니다. 그 책은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 남자의 이야기이자 최후까지 그 남자를 괴롭힐 저주받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빠져든 채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단숨에 책을 다 읽어버린 다니엘은 당연하게도 카락스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카락스의 소설들은 다니엘이 갖고 있는 <바람의 그림자> 한 권을 제외하곤 모두 불태워졌고 곧 다니엘에게 수수께끼의 사나이가 접근하여 이 책을 팔라고 제안합니다. 공포에 질린 다니엘은 그 책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잊힌 책들의 묘지>에 다시 숨기고 묘지의 관리인 이삭으로부터 훌리안 카락스와 가장 가깝게 연결되어 있던 사람의 이름을 들으며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훌리안이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소녀 페넬로페, 훌리안의 가련한 부모, 누리아와 훌리안의 애증의 관계, 어린 시절부터 훌리안을 질투했던 악질 경찰 푸메로의 과거가 차례로 밝혀내면서 다니엘은 절친한 친구 토마스의 누나 베아트리스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자신의 삶이 <바람의 그림자> 속 훌리안 카락스의 삶과 닮아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P : 이곳은 신비한 곳이야, 다니엘. 일종의 성전이지. 네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 한 권의 책이 새 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 때마다, 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 이곳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책들이 언젠가는 새로운 독자, 새로운 영혼의 수중에 들어가길 기다리며 영원히 살고 있지.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스페인 내전 이후입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를 아우르는 이 참혹한 시간대 역시 글쓰기의 연장선상에서 다니엘의 추적 담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듭니다. 증오와 파괴가 온 나라를 뒤덮었던 그 시간대가 아니라면 비밀은 그토록 귀중하지 못했을 것이고 소망은 그토록 격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이 한 명의 작가를 영원불멸의 존재로 존립시킬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내려앉은 끔찍한 침묵, 혹은 공포의 언어가 사람들의 영혼을 영영 파괴할 수도 있다고 작가는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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