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존 업다이크
영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 학교에서 존 업다이크에 대한 공부를 하던 때였습니다. 어머니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을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는데 1987년도에 나왔던 그 책은 이사 과정에서 잃어버렸지만 그 수업을 가까스로 학기 마지막까지 유용하게 읽고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님이 저에게 보내주신 그 책은 <달려라, 토끼>만 있었는데 학교에서 배웠던 원서는 총 4부작으로 이루어진 토끼 시리즈가 한 권으로 묶여 있는 책이었습니다. 두꺼웠던 그 책은 도서관에서 정석같이 목침으로 쓰이기도 했고 일 년을 거의 매일 들고 다니며 읽었습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전형적인 미국의 이미지이지만 제가 자란 서울 신림동이나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인간군상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때마침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와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미국을 관통했던 시대에 대한 수업들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해하기에 좋았습니다. 대공황도 지나갔고 전쟁도 끝났으며 현대적인 산업사회가 제시하는 끝없는 풍요의 비전을 목도했던 이 시기의 미국인들이었지만 여전히 어떤 공포가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때는 누구나 감탄하는 농구선수였던 래빗 앵스트롬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임신 중인 아내를 떠난 그는 장인이 억지로 사게 한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가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내에게가 아닌 다른 여성의 아파트에서 삶을 이어갑니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가 어여쁜 딸을 낳고 래빗은 아내에게로 돌아갑니다. 그가 골대를 향해 공을 던졌을 때 그물을 조금도 흔들지 않고 공이 바닥으로 떨어져 공이 들어간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알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공의 궤적을 분명히 볼 수 없었듯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당연히 받아줄 거 같던 아내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아 그는 다시 집을 나갑니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이던 아내는 갓난아이를 익사시켜 죽게 만들었는데 물론 실수였지만 늘 그렇듯 실수는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한때 래빗을 받아들였던 여성은 래빗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희망이 없던 래빗은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어디에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있는 까닭은 래빗의 무책임한 불안과 무책임한 탈주가 우리의 연민과 짜증과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불륜의 이야기, 우유부단한 래빗의 꼬인 인생 이야기로만 치부하였고 이런 불안을 전형적인 미국적인 불안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이런 불안 또한 어디에나 존재했고 모든 평온은 잠정적이며 대개 사소한 것들이나 찰나의 순간들이 우리의 보잘것없는 평화와 안락함을 불시에 제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래빗의 무책임한 도피를 쉽게 비난할 수 없습니다.
궁금했던 거는 달리기 시작한 래빗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행방은 아직 제가 읽지 못한 책 속에서 확인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제고 저와 닮은 모습으로나 주변에서의 모습과 닮은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이 듭니다.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가 나온 것은 1960년이고, 그의 토끼 사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토끼 안식하다>가 나온 것은 1990년입니다. 그 사이에 업다이크는 <돌아온 토끼>와 <토끼는 부자>를 펴내어서 사람들은 이 네 편을 묶어 토끼 사부작이라고 부릅니다. 업다이크는 2001년에 펴낸 단편집 <사랑의 수고>에 “기억 속의 토끼”라는 중편을 속편으로 집어넣기도 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업다이크는 거의 정확하게 10년 간격을 두고 40년에 걸쳐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자신의 출세작의 주인공 해리 앵스트롬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토끼 이야기를 내놓고 나서 10년을 못 채운 200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직도 미국에서는 한 작품이 더 나오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그의 원고들을 찾아다녔지만 토끼 시리즈는 더 나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