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

제프 다이어

by 무무

책 한 권을 알게 되고 작가들이 그려놓은 멋진 그림 그대로 따라 할 심정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잭 케루악을 좋아했던 저는 엘에이에서 뉴욕까지 로드 트립을 한 적도 있으며 그가 들렸던 발자취를 따라 제일 빠른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지도를 굳이 휴게소에 구입하여 목적지를 빨간색 펜으로 동그라미로 표시하며 곳곳을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는 저는 파리에서 29번 버스를 타고 주인공들의 에피소드와 대화들을 따라 종점에서 종점까지 돌아다니며 수백 가지의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버스에 몸을 실은 저는 마음 내키는 곳에 내리거나 자전거를 빌려 타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하루를 보내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평범한 하루가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제프 다이어”라는 작가의 다른 결의 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에세이나 르포르타주 위주의 글을 쓰던 작가이지만 이 책은 아직까지 그의 유일한 연애소설입니다. 삶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는 20대 청춘 앞에 놓인 사랑을 그리는 이 책은 꿈에 취하고 만남에 취하고 연애에 취하고 하루하루의 유희에 취하고 뒤는 돌아보지 않는 시간들을 그려줍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함 뿐만 아니라 사랑이 완성시켜 주는 삶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의 끝에 숨겨진 어둠의 편린들이 살아 숨 쉬는 이 책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일상에 대한 절묘한 묘사와 섬세한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드러나는 대화는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컬러풀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생동감 넘쳤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막힘없이 흐르는데 특별하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 내용은 책을 쓰기 위해 런던에서 파리로 이주한 주인공 루크는 각국에서 파리의 삶을 좇아 온 이들이 모인 한 창고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오그라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매력적인 여인 니콜과 데이트를 하고 첫날 사랑을 나누며 급속도로 그녀에게 빠져듭니다. 니콜과 나누는 작은 대화 하나부터 사소한 취미까지 모두 자신과 딱 맞다고 여긴 루크는 그녀와의 완벽하고도 영원할 거 같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랑을 꿈꾸게 됩니다. 한편 창고에서 함께 일하는 알렉스도 새 여자 친구 샤라와 연애를 시작하고 루크와 니콜, 알렉스와 샤라 4명이 함께 모이는 시간도 점점 많아집니다. 샤라를 사랑하면서도 만날 때마다 생기가 넘치는 니콜에게도 눈이 머무는 알렉스를 보게 됩니다. 그런 알렉스를 놓치지 않는 루크는 각자 완벽한 상대를 만났다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믿었던 이들의 나날에는 언제인가부터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P 170 : “하고 싶은 게 뭐야, 루크?”

“무슨 뜻이지?”

“인생을 어쩔 거냐고?”

“지금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어.”

“나중에 말이야.”

“나중에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 계속 이렇게. 그러니까, 내 인생. 내가 자기 핵심에 닿았다고 했지? 나도 같은 느낌이야. 내 인생의 중심, 핵심에 다가가고 있는 느낌.”


이 소설의 원제는 <Paris Trance>입니다. trance는 무아의 경지에 이른 황홀함을 뜻하는데 1인칭과 3인칭이 교차하는 서술과 짤막한 단어들이 수없이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이 무아의 경지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본인이 취한 듯 써 내려간 문장들은 눈앞에 놓인 사랑과 그 어떤 대상 그 대상이 주는 미칠 듯한 행복에 빠져들어 갇혀버린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그려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황홀경이 언젠가 사라져 버리는 공허함만이 남을 것임을 알고 사랑을 시작하지만 가장 빛나는 시기에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그런 앞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완벽한 사랑 완벽한 애인이 주는 궁극의 행복이 손안에 있으니 오직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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