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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02. 2023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20세기의 도서관, 사상의 디자이너라고 불립니다. 1899년 8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열렬한 독서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집안의 서재는 도서관이 무색할 만큼 책으로 가득했고 그에게 있어서 독서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로 가는 모험이라 할 만큼 책을 사랑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보르헤스는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아홉 살 때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에스파냐어로 번역해 신문에 투고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물려받은 것은 책과 문학적 소질만은 아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에 이어 시력이 악화되다 결국 실명하는 유전적 질환도 함께 갖게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그는 눈에 치명적이었던 독서를 멈출 수 없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라는 첫 시집과 소설 <불한당의 세계>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게 됩니다.


1937년 보르헤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미겔 카네 시립도서관에 사서로 취직을 하지만 간단한 업무에 월급도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문학에는 무지한 동료들의 냉대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오히려 보르헤스는 지하 서고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창작에 몰두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 보르헤스에게 중요한 사건 두 가지가 일어나는데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이었고 또 하나는 보르헤스 자신이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병석에 누운 보르헤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 일밖에 할 수 없었고 이때부터 쓴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작가>를 비롯해 본격적으로 창작된 보르헤스적인 단편소설들은 그의 증보판인 1944년 <픽션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하였고 이후로 그는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1967부터 1968년까지 보르헤스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여섯 번에 걸친 특강을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사실 문학 전반보다는 콕 집어 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라는 것이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작가가 의도하거나 꿈보다 해몽 인격이 많아 우리말 시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지는데 보르헤스는 여기서 고대 영어, 스페인어, 중세 독어 시구를 자유롭게 소개합니다. 보르헤스의 천재성이 사실 조금은 어렵게 다가왔지만 두 번째 강연에는 은유를 이야기하는 부분부터는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이해를 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이나 소개하는 글들이 모르는 것이 많아 당황스럽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비슷한 책이나 문장들을 떠올리며 대입(?) 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P : 이제 저는 표현을 믿지 않고 오로지 암시만을 믿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단어들이란 무엇입니까? 단어들은 공유된 기억에 대한 상징입니다. 만일 제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면, 여러분은 그 단어가 상징하는 것에 대한 어떤 경험을 꼭 갖추어야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 단어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암시만 할 수 있다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도록 노력할 수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독자가 충분히 예민하다면, 무언가를 우리가 그저 암시만 한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겠지요.



1960년대에는 노벨문학상 위원회가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까지 이 둘은 작가들과 대중들 모두를 사로잡아 위협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잘 처리하지 못하면 상의 권위에 흠집을 낼 정도였습니다. 이 둘을 빼고 받은 이들은 장 폴 사르트르, 사무엘 베케트, 가와바타 야스나리, 존 스타인벡 등등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분들이 받았지만 문제의 1965년에는 최종심까지 다시 올라갔습니다.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이 됐지만 결국 수상자는 미하일 숄로호프가 받았습니다. 문제는 <고요한 돈강>으로 수상을 한 숄로호프는 역대급 표절작으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상을 놓친 두 작가는 1974년에 다시 한번 최종심에 오르지만 수상 몇 달 전 나보코프는 결국에 세상을 떠났고, 노벨위원회의 사랑을 받지 못한 보르헤스는 영원히 노벨문학상 후보로만 남겨졌습니다. 보르헤스가 수상을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단편을 쓴다는 이유였습니다. 단편은 항상 경시되어 왔다가 2013년 엘리스 먼로가 단편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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