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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25. 2023

읽거나 말거나

by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 책은 저자가 1967년부터 2002년까지 30여 년 동안 폴란드의 신문, 잡지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문학칼럼에 기고했던 562편 중 137편을 골라서 모은 서평집입니다. 그녀가 서평을 한 책이나 글들을 보면 정말로 다양한데 요리책부터 시작해서 여행안내서, 자기 계발서와 실용서, 대중학술서, 소백과 사전, 역사논평, 회고록, 전기까지 가히 전방위적입니다. 재밌있는 건 <춘향전>, <삼국지>, <한자>, <일본의 예술> 등 동양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다른 서평집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서문에서부터 선전포고를 하는데 이 책의 분위기가 말해줍니다. “토론이나 추천의 대상도 되지 못했던 그 밖의 다른 책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문득 나는 이런 책들에 관심을 쏟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라고 쓰면서 시작을 알립니다. 그러면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많지만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 책인지를 알려주는 독서칼럼은 드물다면서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만큼이나 나쁜 책을 알아보는 안목도 소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있어요. 한번 읽어볼래요? 뭐, 싫으면 말고요...”라는 식의 서평은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서평은 폴란드의 해양생물학자 엘지비에타 부라코프스카의 책 <돌고래의 모든 것>을 서평 하면서 쉼보르스카가 편지를 쓴 내용입니다. “친애하는 돌고래들아! 너희는 나름대로 완벽한 존재들이야. 자연은 너희에게 관대한 예외를 허용했어. 그 증거로 너희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여생을 보내지 않아도 되지.” 이렇게 시작한 편지는 돌고래가 전하는 전쟁과 평화의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사랑하는 돌고래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전부란다. 태평스러운 바다의 어린 영혼, 절대 읽지 않을 이 편지의 선량한 수신인이여.” 이런 식으로 그녀는 아주 느긋하고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유머러스하게 서평을 합니다.



P 춘향전 부분 : 열녀 중의 열녀 춘향에 관한 이야기는 구전되어 오다가 18세기말, 19세기 초에 글로 기록되었고, 당연히 한국 고전문학의 정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어떤 이들은 생생하고 정교한 묘사를 높이 평가하고, 다른 이들은 생동감 넘치는 러브신을 극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는 수준 높은 감성에 참사를 보내고, 사회비판적인 요소와 여성의 힘겨운 운명에 대한 공감의 메시지에 매료된 이들도 있다.

그 밖에도 판타지적 요소가 없다는 점을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덕목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찬사의 밑바탕에는, 리얼리즘이야말로 문학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동화나 민담은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혼합되어 있으므로 미성숙한 하위 문학이자 아직 나비로 성장하지 못한 애벌레와 같은 것을 치부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동화나 민담을 읽는다는 것이 상당히 힘겨운 일일 것이다. 모든 종류의 기적이나 환상은 미학적으로 불완전한 일종의 죄악으로 치부되고, 개연성에 위배되는 요소들은 전부 유치하기 짝이 없게 여겨질 테니 말이다.



알쓸신잡에서 흥미를 끌었던 서평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가 독일이 통일된 후 <광야>를 발표합니다. 대부분의 유럽권에서 그렇듯 독일은 유명 작가의 책이 서점에 깔리는 날이면 비평가들의 평이 언론에 일제히 나옵니다. 사람들이 비평을 보면서 자기 견해를 형성하는 등 건전한 비평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독일을 유시민 작가님께서 부러워하듯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노벨문학상 작가의 신작을 가치 없는 책이라며 찢는 그림이 독일의 슈피겔에 나온 후 티브이에서 이 책에 관해 토론을 하는 모습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뼈 때리는 말을 하시는데 우리나라는 칭찬 일색의 “주례사 비평”이 많다고 하시면서 이러면 우리 문학이 죽어간다고 안타까워하신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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