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책을 읽다가 중간에 멈춰서 창문을 바라보게 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문장이 너무 와닿거나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을 법한 문장들을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을 받는데 이 책이 저에게는 그러했습니다. 책을 사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창문을 넌지시 바라보다 생각하고 다시 읽고를 반복하게 하는 그러한 책이었습니다. 그 시절 내 마음을 대신해 주었던 책으로 기억을 해서 다시 잡기가 무섭기도 합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 그동안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해 온 육십여 년의 삶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40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쳐 오던 주인공은 이제 정년퇴임을 하고 아내와 함께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 목가적인 느낌이 드는 숲 속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합니다. 호젓한 숲 속 빈터에 자리 잡은 작은 집에서 아내와 함께 고요한 날들을 보내리란 기대에 차서 행복함에 가득 차 있지만 그것도 잠시, 똑같이 생긴 집을 갖고 있는 이웃 노인의 등장으로 평화를 꿈꾸던 생활은 엉망이 됩니다.
전직 심장전문의였다는 이웃 노인은 40년 동안 이 숲 속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웃 노인은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주인공 집 문을 두드립니다. 정확히 4시가 되면 찾아오는 이 손님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소파에 앉아 묻는 말에는 예, 아니오로 일관하면서 정확하게 2시간 앉아 있다가 돌아갑니다. 평화롭고 호젓한 숲 속 생활을 꿈꾸던 이들 부부는 점점 괴로워합니다. 이웃의 방문을 거절할 수도 있고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평생 몸에 밴 습관인 예의를 한 순간에 버리기란 쉽지 않았던 주인공 부부는 한 번은 이웃 남자에게 아내와 함께 방문하도록 청합니다. 뚱뚱한 이웃 노인의 아내를 데리고 방문을 하고 더는 그의 방문을 견딜 수 없어 분노하며 쫓아냅니다.
이웃 남자의 삶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했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어느 날, 아내한테도 말하지 않고 밤중에 몰래 이웃 남자의 집을 방문해 베개로 눌러 죽입니다. 일흔 살의 뚱보 노인이 죽었다고 해서 아무도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P 184 : 두 달 전 여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리스어와 라틴 어를 가르쳐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이 책을 나라는 존재가 수수께끼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갑자기 여러 모양의 의문부호들이 생겨났고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생동안 얼마나 길을 찾고, 퍼즐 마지막 것까지 맞출 수 있을지 새삼 나라는 존재가 낯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