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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by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우리에게 생소한 이 작가는 르포기자입니다. 평생을 자국인 폴란드보다 다른 여러 나라들에 많이 살았고, 민족과 문화, 종교의 이질성으로 빚어진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 일에 생을 바쳤습니다. 전쟁 관련 이력도 화려합니다. 12번의 대규모 전쟁을 취재했고, 여러 차례 최전방에서 취재하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 사이 40번 넘게 체포와 구금을 당했는데 그중 4번이나 처형을 당할 위기에도 봉착을 하였는데 다행히 구출되었습니다. 오지 탐험에서도 몇 번 죽을 뻔했고, 에리트레아에서는 전갈에 물려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으며 탄자니아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렸고 밀림에서 코끼리에게 밟히고 독사에게 물리는 등 책이나 작가 소개에서 볼 수 없는 일들도 많이 겪어야 했습니다.      


투철한 기자정신과 전문적인 역사, 지식 그리고 시인의 감수성까지 두루 겸비한 작가는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에 저널리스트로서는 최초로 2005년과 2006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책의 시작은 기자생활 초반에 파견될 때로 추정됩니다. 해외 특파원이 되어 2500년 전 헤로도토스도 그러했듯이 언어, 지리, 문화가 낯설기만 한 세계 방방곡곡의 다양한 나라들을 누빕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평생 홀로 타지를 떠돌던 카푸시친스키에게 유일한 동반자가 됩니다. 이 책에는 2명의 화자가 등장하는데, 한 명은 주요 장면을 인용하면서 장면이 갖는 의미와 현대사회와의 연관성을 냉철하게 되짚어보는 분석자입니다. 또 한 명은 특정한 장소로 파견되어 사건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기자로서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카푸시친스키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중국과 인도, 이란과 이집트, 그리스, 아프리카 대륙을 오가면서 몸소 체험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고대 역사에 빗대어 이 책을 통해 소개합니다.           



P : 헤로도토스의 저술에서는 증오나 분노의 감정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만약 누군가가 이런 행동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 근거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든 밝혀내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는 결코 개별적인 인간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나무라고, 비판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타락하고, 사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제도에서 잘못을 찾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헤로도토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권위주의와 독재정치, 폭정에 항거하는 투사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이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존엄하게 살 수 있으며, 인간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헤로도토스는 이야기한다. 소국가들로 이루어진 조그만 나라 그리스가 동양의 거대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인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며, 그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카푸시친스키는 헤로도토스를 동경하며 서술방식을 터득하면서, 기자로서의 본분인 보고 들은 내용을 사실대로 기록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면서도 한 가지 사건이나 현상을 언급하더라도 자기가 수집한 모든 내용들을 전부 소개하는 것을 서술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스스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더욱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이 책이 더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마지막 르포르타주 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저서만 140권이 넘을 정도로 그의 마지막 열정을 쏟아낸 작품입니다. 특별한 스토리라인도, 자극적인 줄거리도 없는 이 책은 그저 개별적인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다녔다는 곳을 하나씩 찾아보기 위해 지도를 펼쳐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발자취가 결국에는 현대사의 기록이었기에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던 평생을 담은 그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는 그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신 있게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는 멋진 책이라고 자부하기에 많은 분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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