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Jul 19. 2023

산티아고 가는 길

by 세스 노터봄

천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개껍질을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온 길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길이며 성스러운 길이라고 하는 ‘산티아고’입니다. 그곳에 관한 수많은 여행 책들이 있지만, 제가 이 책을 좋아한 이유는 저자의 글 쓰는 방식과 남들이 가지 않는 정석적이지 않은 다른 길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네덜란드어 원서 제목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우회로, (De omweg naar Santiago>입니다. 우회로라는 표현이 암시하듯 노터봄의 여로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야곱의 무덤에 이르는 보통의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일부러 벗어납니다. 어디 가서 실수하거나 하는 여행서가 아닌 관찰에 근거해서 그 나라의 본질을 잡아낸 계획적으로 합니다. 유럽 본토에서 시작해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대에 있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종착지로 가는 수많은 길을 소개합니다. 식당, 숙소, 명소에 대한 내용은 일절 없고, 그렇다고 단순히 길만 설명하는 것이 아닌 스페인 전역의 샛길을 따라 역사와 미술, 문화, 그리고 사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P : 등 뒤에서 베루엘라 수도원의 문이 덜컹 닫힌다. 태고의 침묵을 깨뜨리면서 울려 퍼지는 텅 빈 소리에, 다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세상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한다. 어디로 가지? 목적지야 아미 소리아로 정했지만, 문제는 어떤 길로 어떻게 가느냐다.


P : 어쩌다 보니 가다가 샛길로 빠지고 거기서 다시 샛길로 빠지는 여행이 되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또 다른 샛길이 나타나면 그리고 과감히 차를 몰고 간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온 저자는 10대 후반, 양부에 의해 맡겨진 수도원을 뛰쳐나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성장했습니다. 그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있지만 (20살에 쓴 자전적 소설, 필립과 다른 사람들), 사실 그는 산티아고로 가는 스페인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공간 여행뿐 아니라 시간 여행을 이야기하며 오래 고심한 저자의 산티아고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손자를 무릎에 뉘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베루엘라 수도원에서 독살당할 뻔했던 성 베네딕투스를 떠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오비에도에서 스페인의 별난 왕들의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이 책의 여정은 중세의 영적인 순례와도 사뭇 다르고 현대판 걷기 여행과도 다릅니다. 훌륭한 로마네스크 건축 기행서이면서 벨라스케스와 수르바란과 같은 바로크 화가들에 대한 멋진 미술 에세이입니다. 로마시대 돌길까지 본 적 없든 그곳을 머릿속으로 상상력 하며 읽을 수 있는 역사서이자 여행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