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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

by 얀 벨츨

대륙으로 이뤄진 남극과 달리, 북극점을 중심에 둔 바다로 이뤄진 북극지역은 오로라 하나만으로도 신비의 대상 그 자체입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북극권에 지천으로 쌓인 눈과 얼음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 알 수 없지만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코카콜라의 광고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바다를 떠도는 유빙 위로, 처연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북극곰은 북극권을 동화적 세계로 상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북극은 더할 수 없이 혹독한 기후를 품고 있는 지역이자 고독한 장소입니다. 눈보라 치는 추운 날 바깥에서 얼굴을 잘못 내놓았다간 순식간에 코에 동상이 걸려,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홀로 길을 가다 다치거나 조난을 당해 죽으면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눈과 얼음에 갇혀 썩지 않은 채로 남는 곳이 현실 속의 북극입니다.      

이 책은 100년 전쯤 북극권을 무대로 펼쳐지는 탐험이자, 민족기술지이고, 중간중간 유머가 가미된 콩트집입니다. 저자인 얀 벨츨은 체코 남부 모라비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시베리아 횡단철도 교량 공사장에서 자물쇠공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말 한 마리에 의존해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1897년, 드디어 북극권에 도착합니다. 그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새로운 삶을 개척해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북극에 정착한 1800년대 말~1900년대 초에는, 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외지인들을 에스키모라고 부르고 자신들은 이누이트로 부르는 북극 원주민들이 있었지만 이들 외에 다양한 인간군상이 이 불모의 땅과 바다에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을 한 자리로 모이게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황금이었습니다. 북극권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북극판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어느 조선 여인까지 등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정어리잡이 배에 실려 왔다가 현지에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그녀는 어떠한 사연으로 오게 되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금을 찾기보다는 쇠를 다룰 줄 아는 기술과 장사수완을 이용해 차근차근 삶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저자는 가난한 하층민 출신이라 배움은 부족했지만 기억력이 뛰어났고 영리했으며 무엇보다 순박한 현지인들과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았습니다. 외지인과 에스키모인들 모두에게 두터운 신뢰를 얻어 <곰을 먹은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훗날 족장으로까지 추대됩니다.         


  

P : 북극에는 참된 자유가 있다. 누구의 자유도 구속되지 않는다. 황금의 땅 북극 사람들의 깃발은 지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이들의 깃발이다.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추구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나의 것이며 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자연은 수많은 선물을 주며 사람은 그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된다.           



저자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체코인으로 만들어준 이 책은, 100년 전 북극 사람들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흥미진진하면서 어딘가 구슬프고, 실소를 자아내는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됩니다. 저자가 겪는 죽을 고비들은 모험소설을 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혹독한 자연에 할퀴거나 스스로가 쳐놓은 탐욕과 오만의 함정에 빠져 스러져가는 인간들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우리와 다를 거 같은 그 사람들도 별반 도시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100년 전, 북극 지역의 독특한 자경활동과 사법체계였습니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사는 지역이고 공권력은 멀리 있는 지역이라 도둑과 사기꾼, 살인자가 한번 나타나면 자체적으로 잡아서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 이주민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안에서 자연스레 연대가 형성됐고 사건이 발생하면 다각적 네트워크를 통해 범인들의 행방을 수소문합니다. 용의자의 위치가 파악되면 무장한 채 추적에 나서고 붙잡힌 용의자들은 즉결심판에 넘겨집니다. 재판에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오래 서 있으면 모두가 얼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형이 선고되는 것처럼 보이며 방식은 매우 가혹한데 자살토록 하거나, 총살하거나, 아니면 태워서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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