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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지도에 없는 마을

by 앨러스테어 보네트

요즘은 GPS나 지도 앱만 켜면 세계 곳곳을 쉽게 보고 여행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과연 지도 바깥에 숨은 장소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제목의 이 책은 영국 뉴캐슬대학교 사회지리학과 교수인 앨러스테어 보네트가 공식적인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놀라운 지역 곳곳을 탐험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현대의 지도는 이 세상을 완벽하게 재현한 상징체계로 지구상에 감춰진 장소가 더는 없을 것이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인 우리들의 상식을 벗어나게 합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기술에 힘입어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만, 저자는 세상 모든 것이 밝혀져 측정되고 기록되면서 미지의 세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오히려 안타까워합니다.      


저자는 공식적인 지도상에 드러나지 않는 장소들을 탐험하며 끊임없이 분열되는 세계를 살펴봅니다. 국경이 와해되고 새로운 지역주의가 탄생하는 중동지역의 지리를 비롯해 작디작은 고립지로 영토가 조각나고 없던 섬들이 탄생하는 지구의 감춰진 구석구석을 이 책에 기록했습니다. 독특한 장소 서른아홉 곳에 관한 이야기가 담았고, 각각의 이야기가 장소에 대한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리학에 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우리는 확정된 사실에 익숙하지만 이들 장소는 명확한 국경도 객관적인 지리 정보도 단정하기 힘들며 때로는 지도상에 점선으로 표시되거나 공식적으로 아예 나타내지 않기도 합니다.      


저자는 제멋대로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수많은 섬들, 고립된 곳과 미완의 국가들, 신주쿠역의 유령 터널처럼 환영이 떠도는 장소들, 지도의 저작권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잘못 표시한 곳 등 예상을 비껴가는 장소들을 안내하며 지리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저자의 거침없는 걸음과 그에 얽힌 이야기는 탐험을 꿈꾸는 사람들을 매혹시킵니다.           



P : 나는 부드럽게 출렁이는 구조물 위에서 모터 고무보트를 기다린다.     


P : 찬디가르와 록가든은 모두 상상 속에서 영토를 탈환하려는 시도다. 한쪽은 미래를, 다른 한쪽은 과거를 바라보고 있지만, 양쪽 다 대담한 시도이며 적어도 현재로서는 서로의 존재에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찬디가르와 록가든은 일종의 합의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장소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컨대, 기이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모더니즘은 지루하며, 가장 합리적인 도시에도 도피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금의 인도가 특히 귀담아들어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넥찬드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찬사들이 오늘날 인도를 뒤덮은 소음 속에서 전부 묻혀 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런던 교외 에핑 출신으로 런던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고향 마을이 획일화된 풍경으로 전락한 현실을 목격하고 장소의 중요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며 장소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확실히 급변했습니다. 작은 마을들의 개성은 사라지고 밋밋한 경관이 범람하며 누군가는 이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진짜 장소를 체험하기 위해 떠나지만 정작 자기 삶의 터전에는 애착을 가지지 않아 보입니다. 보네트는 기이한 장소들로 독자를 안내하며 장소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 즉 토포필리아(topophilia)를 일깨웁니다. 그를 따라 걷다 보면 장소란 단순한 지리적 배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였음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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