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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여행자의 책

by 폴 서루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런 제목을 쑬 수 있는 여유와 삶을 부러워했고 책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삶이 두려웠습니다. 간혹 여행자로서의 삶을 꿈꿔 본 적이 있는 저로서는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글과 사진으로 글을 남길 수 있는 삶이 황홀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수많은 여행 작가들의 삶을 엿보고 나니 그리 만족스러운 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장소에 가서 그 지역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사색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만 하였는데 50년간 여행을 해온 작가의 노고를 보며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폴 서루 자신의 혹은 저명한 여행 작가의 주옥같은 글들을 빌려와서 전체의 구성을 이뤘습니다. 많은 작가의 글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 맥락에 필요한 적재적소의 필요조건들을 직감적으로 채워줍니다. 또 작가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들을 담아서 보여줍니다. 제1장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제27장 ‘당신만의 여행을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광범위합니다. 때로는 여행자의 가방 속까지 들추어 보듯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하고 때로는 몽환적인 여행자의 시선처럼 구름 위를 걷는 듯 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여행은 언제나 정신적 도전이며 가장 힘든 순간조차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여행의 기쁨에 대한 글들의 모음집을 제공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말합니다. ‘여행은 마음의 상태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이국적인 곳에 있는지 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여행은 거의 전적으로 내적인 경험이다.’라고 여행을 정의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순간순간이 여행 중임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서정적인 단상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히 구체적인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의 중심’이라는 제목을 단 2장에는 오늘날 관광객들이 그리스인의 델피 신전을 여행할 때 반복적으로 듣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곳이 세계의 배꼽인 옴팔로스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지구의 또 다른 배꼽들의 목록을 상세하게 소개합니다. 중국 사람들도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또 페루 사람들은 쿠스코를, 예루살렘 사람들은 알 아크사 사원을, 멕시코 사람들은 파츠쿠아로 호수에 있는 파칸다 섬을 세계의 배꼽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기차 여행의 즐거움”을 다룬 3장에서는 이제껏 발간되었던 11권의 특별한 기차 여행서와 핵심 내용을 소개합니다. 하루키가 최고의 여행책이라고 소개한 이 책에서 그를 이 책을 쓰게 하기까지 그에게 스며들어있던 다른 저명한 여행서의 진수를 소개합니다. 서머셋 모옴이 태국의 기차역에서 느낀 점을 기록한 <응접실의 선사>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째서 작가는 기차 정거장에서 그가 원하는 만큼의 많은 느낌들을 얻을 수 없겠는가? 펜실베이니아 정거장에는 뉴욕의 모든 신비가 있고, 빅토리아 역에는 음울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런던의 광대함이 있다.”          



P : 여행이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다. 그들 특유의 악취와 고약한 향수를 맡으면서, 그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그들의 인생에 대해 듣고 그들의 의견을 참아내면서, 때로는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불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늘 이동하면서, 계속 바뀌는 여행 일정을 짜면서, 혼자 자면서, 갈 곳을 즉흥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P : 소설을 쓰는 것과 가장 비슷한 일은 낯선 풍경 속을 여행하는 것이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었습니다. 각각의 항목이 제각각 독립성을 갖추고 있기에 따로 떼어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나름 볼거리 많고 먹거리도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그의 책에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한국은 17장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편에 아주 짧게 소개되어 있는데 "그리고 한국에서 보신탕의 주재료는 늘 개고기이다."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여행기나 여행 작가들이 군데군데 소개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소외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2011년에 발표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작가에게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자 은둔자의 나라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만을 이야기하자면, 낯선 여행과 책, 그리고 인생은 닮았다고 일깨워 주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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