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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

by 타히르 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약 9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신비의 도시 카사블랑카가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동서양의 모든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신비함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고 영화 <카사블랑카>에서의 사랑이 넘치는 낭만적인 도시로 저한테는 각인되어 있는 곳입니다. 일 년 내내 비슷한 적당한 기온을 유지하고 여행하기에 비싸지 않으며 현대와 과거가 모두 공존해 있는 이 도시는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들 중 하나입니다.      


영국 작가 타히르 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떠났던 모로코의 짧았던 여행 덕분에 카사블랑카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라면 아치와 주랑이 있고 향기로운 참죽나무로 만든 높은 문과 숨겨진 정원이 있는 안뜰, 마구간과 분수, 과일나무가 있는 과수원, 그리고 수십 개의 방이 있는 제대로 된 집으로의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곳을 정착하는 것에 대한 주변 동료와 지인들의 만류도 듣지 않고 그는 카사블랑카의 대저택 다르 칼리프를 사고 가족들과 그곳으로 이사합니다. 그러나 이사 온 첫날밤 모든 환상은 산산조각 납니다.      


오래전부터 저택을 관리해 온 관리인들은 진(Jhin, 알라가 불에서 만들었다는 정령)들을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한 방에 석탄 덩어리로 원을 놓고 그 안에서 자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첫날 밤을 무사히 보낸 뒤로도 관리인들은 툭하면 진을 핑계 대면서 말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 작가의 가족들이 사는 것을 진들이 원하지 않으니 퇴마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까지 말을 합니다. 근처에 사는 조폭 두목의 아내는 작가가 다르 칼리파의 집문서를 찾아내지 못한 것을 알고 가끔씩 찾아와서 협박을 하고 집안 관리를 위해 데려왔던 비서 조흐는,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모함했다고 자신의 수호 정령이 말해줬다며 작가의 계좌에서 4천 달러를 인출해서 도망을 가기까지 합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저택을 보수하기 위해 건축가에게 보수공사를 의뢰하지만 건축가가 보낸 인부들은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따져도 건축가는 나 몰라라 합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 혈통이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슬람 세계의 문화와 전통을 체험하지만 영국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쭉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다른 영국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던 작가에게 모든 것은 낯설기만 합니다. 작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환장할 일들의 연속에서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두 번째 비서 카말이었습니다. 카말은 미국에서 여러 해 살다 와서 영어에 능통하고 업무 처리에 있어서도 유능한 모로코 사람이었습니다. 모로코 인들의 사고방식과 삶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작가와 가족들이 모로코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작가에게 혀를 끌끌 차면서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작가와 카말이 모로코 생활을 하면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자신이 간 장소를 여행자보다는 밀접하게 현지인보다는 낯설게 바라본다는 작가의 말처럼 카사블랑카와 모로코를 바라봅니다. 카말이 기존 건축가를 해고하고 새로 데려온 건축 공들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저택을 탈바꿈하지만 저택 공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관리인들은 툭하면 진 핑계를 대면서 말을 듣지 않지만 자신들이 받은 월급의 3분의 1을 작가의 이름으로 근처 학교에 기부해 마음을 찡하게 하기도 합니다. 클럽에서 만난 모로코 여자에게 반해 이슬람 이단 종파의 일원이 된 미국 청년의 모습에 혀를 차다가도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모로코 사람들에게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추억에 잠깁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인정, 속물근성과 뒤틀린 자본주의가 뒤섞인 모로코에서 좌충우돌하며 일 년을 보낸 뒤 작가는 말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우리가 모로코와 관리인들에게 그리고 칼리프의 집에서 마침내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P : 어스름한 무렵의 고요함 속에서 슬픔이 있다.           



작가의 블로그를 찾아보니 지금도 같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돈을 들고 튀었던 첫 번째 비서 조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름의 애로사항이 아직 있지만 모든 상황들을 감당할 가치가 있다고 할 만큼 그곳은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습니다. 작가와 가족들이 함께하는 사람들이 다르 칼리파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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