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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별 헤는 밤

by 윤동주

옛 이름 북간도 명동촌에는 시인의 고향이 있습니다. 간도 이민 4세대였던 윤동주 시인은 이곳에서 태어나 스무 해를 사셨습니다. 사후에 발견된 그의 일기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뿌리라고 일컬었던 명동 소학교를 다니셨고 이민 초기에 십시일반으로 국민들이 모아준 돈으로 좋은 땅을 사서 학교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일기를 쓰시기도 하셨습니다. 스무 살에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에 오셔서 그리워하던 모국에서의 대학생활을 하셨습니다. 1941년, 일본의 제국주의의 발악의 일환이었던 국어 전면 금지를 선포하였고 우리말로 시를 써도 시집을 낼 수 없었던 시대를 맞이하셨습니다. 무슨 연유였는지는 알지 못하나, 아님 자신의 미래를 알고 계셨을지 모르겠으나, 지인이었던 정병욱 님에게 자신의 원고를 주시고 돌아올 때까지 맡아달라고 하십니다. 국어학자이자 수필가였던 정병욱 님은 징집이 되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신도, 동주도 죽으면 이 원고를 들고 자신들의 모교로 원고를 들고 찾아가라는 말을 남기고 전쟁터로 향합니다.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 시인은 광복을 6개월 정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유고가 된 그의 필사본은 해방이 되어서야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 해방이 되고 세상에 나온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90년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실리게 되었습니다. 이바라기 노리꼬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저항 시인이 그의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아 번역을 하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윤동주 시인의 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교과서에 계속 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하숙집을 그대로 간직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유품들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020년 연세대학교에서는 윤동주 기념관을 만들며 이곳에서도 많은 유품들을 받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옇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지금도 가끔 주변 지인들에게 질문을 듣습니다. 한국에 노벨문학상에 견줄 만한 작품이 있느냐는 말에 몇 권의 책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게 되고 아마 자랑스럽게 소개하는데 책의 시작은 윤동주 시인일 것입니다. (살아계셨다면 충분히 받았을 거라 이야기했습니다.) 한 줄로 요약될 그의 노벨문학상 코멘트는 “시인은 별에게 말을 걸었고 별은 시에게 마법을 걸자, 시는 세상을 별로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한국어를 반짝반짝 빛나게 한 작가” 로 표현하면 될 거 같습니다. 사실 이 표현은 제가 한 게 아니라 유학 생활 시절, 국내문학뿐만 아니라 문화도 알려지지 않던 그 시기에, 해외문학 교수님이 윤동주 시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 (실제로 반짝 반짝이라고 하실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셨습니다.) 저는 그의 보조를 영광스럽게도 1년 반 정도를 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3명의 시인을 작업하셨는데 고인이 아니셨던 고은시인과 직간접적으로 번역될 책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제일 먼저 나오게 되었고 이후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6개월 정도 작업을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결국 못 만들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그의 시집을 만날 수 있어서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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