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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지옥에서 보낸 한철

by 아르튀르 랭보

랭보는 프랑스 샤르빌에서 군인인 아버지와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방랑벽이 심했는데 부모의 냉정한 양육태도가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16살부터 시를 썼고 이를 폴 베를렌에게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1873년까지 그와 광적인 동성애를 나눈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느 날 랭보가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베를렌이 랭보에게 권총 두 발을 쏘았고 랭보는 그와 결별한 후 고향집으로 돌아와 쓴 시가 바로 이 책입니다. 이후 랭보는 죽을 때까지 17년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키프로스,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유랑생활을 합니다. 유럽문명을 거부하고 아프리카로, 미지의 세계로 탈출한 것입니다. 랭보는 행려병자로 사망했고, 어쩌면 랭보의 이 산문시는 탕아의 고백서이기도 합니다.      


20살에 절필을 선언한 후 랭보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커피 중개 회사에 근무하기도 했고, 총기 매매도 했다고 합니다. 베를렌이 지어준 랭보의 별명은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내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몇 번의 가출을 경험했고 연애를 위해 수시로 국경을 넘었으며 산과 들을 몇 시간씩 쏘다니며 걷는 걸 즐겼다고 합니다. 관절염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쉬지 않고 걸어 다녔던 그는 끝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미(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 그러고 보니 지독한 치(痴)였다 -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나는 죽어 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나는 피와 모래에 범벅이 되어 죽기 위해 재앙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서 팍 쓰러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지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나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 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가 그 열쇠이다 -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 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꽃을 나에게 씌워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 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랭보의 시는 대부분이 악몽 같습니다. 악몽을 글로 풀어쓰거나 혼잣말을 중얼중얼 적어 내려간 것처럼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심오하고 어지러운 단어들이 가득합니다. 베를렌과의 연애는 폭력적이고 우울했다고 하는데 마지막을 권총으로 장식했으니 그 기억이 더욱 충격적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방랑을 즐기고 모험과 여행을 즐겼던 랭보의 일생과 그가 남긴 작품은 천재의 작품이었다가 반항아의 객기였다가 악몽이 되기도 하고 환상이 되기도 하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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