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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천 개의 아침

by 메리 올리버

저에게는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있습니다. 영상통화도 문자도 아닌 손으로 쓴 편지를 잊을만하면 뜬금없이 보내오는데 편지를 받는 날이면 저에게는 일상에서의 큰 선물과도 같은 날로 바뀌게 됩니다. 멀리서 날라 오는 편지에는 친구의 다정함과 진심으로 저를 생각하고 응원해 주는 짧지만 가슴이 따스해지는 감동을 저에게 선물합니다. 이 책은 그 친구가 몇 주 전에 보내온 책이었는데 읽고 나니, 그 친구가 메리 올리버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책과 글을 사랑하고 매사에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정적이며 자연을 벗 삼아 멋있게 살고 있는 그 친구 닮은 이 책은, 읽는 내내 미소를 지으며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2009년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이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낭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어요.”로 시작하는 이 시는 당시 많은 미국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우리에게는 김연수 작가님의 소개로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 시인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녀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살다 2019년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자연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책은 올리버가 50여 년 간 해변가 마을이자 아티스트들의 고장인 프로빈스타운에서 살며 마주한 수많은 아침 풍경을 보면서 쓴 시집입니다. 그녀는 매일 뒷주머니에 작은 공책을 꽂고 숲과 바닷가를 거닐었고 진주색 털옷 입은 흉내지빠귀의 노래와 시간에 따라 파도가 밀려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는 모습을 시로 풀어냈습니다. 허리케인이 마을을 할퀴고 지나간 뒤에도 어김없이 뭉툭한 가지들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탄생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시로 옮겼습니다. 그녀는 시를 섬세한 언어로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고 연결돼 있으며 생명은 태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순환한다는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올리버의 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삶을 긍정하는 언어가 중심에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우울한 날에도 기억해야 할 기쁨, 고마움, 행복, 사랑의 이름을 그녀는 노래합니다. 세상 모든 나인 우리들이 충분히 사랑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시인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원사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그런 말을 해, 아니 어쩌면

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사실, 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곤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지,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정원사가

그의 자신들인 장미를 돌보고 있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동물의 왕국>이나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이나 계곡을 가서 가만히 책을 읽으시던 어머니 모습은 당시에는 심심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고 어느 순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찾아서 보는 저를 발견하며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와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도 돼있다 생각합니다. 아직 자연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나 머지않아 눈과 귀가 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저도 메리 올리버 같은 시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시 한 편을 즐기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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