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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끝과 시작

by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시는 어떻게 보면 비교적 짧은 문장이나 단어들의 나열로 간단해 보이지만 철학적 사고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쉼보르스카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우리의 문화 배경이나 언어와 관계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녀의 시는, 많은 비평가들에 말에 따르면 번역의 투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가 우리들의 가슴속에 울림을 퍼트리기에는 충분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의 언어는 한 땀 한 땀 옮겨놓은 문장의 집으로 모두 의미를 갖는 시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시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할 일이 많다고 한 그녀의 시에 대한 자세가 더없이 가깝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들을 통해 시인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하며 의미 있는 일인지를 되새기게 합니다.     

 

이 시집을 덮고 쉼보르스카라는 작가의 이름이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가로 다가오게 되었고 이름마저도 시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시집은 시인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이 책은 나의 인생과 친구의 인생,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 인류의 인생이 이 책에 그녀가 풀어놓았습니다. 그녀는 시를 쓰는 것은 대상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며 시는 시대나 국경을 초월하고 어떤 질문과 성찰, 공감을 준다고 합니다. 우리의 시선과 감정은 같을 수도 있지만 시인은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에서 대상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녀의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등을 이용합니다.          



현실      


현실은 꿈이 사라지듯

느닷없이 푸드덕 날아가버리지는 않는다.

술렁대는 바람의 기운도, 초인종 소리도

감히 흩어지게 할 수 없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도, 요란한 경적도

감히 멈출 순 없다.

꿈속에 나타난 영상은

아련하고 모호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실이란 말 그대로 현실일 뿐,

풀기 힘든 난해한 수수께끼이다.

꿈에는 열쇠가 있지만

현실은 스스로 문을 열고는

도무지 잠글 줄 모른다.

그 안에서 학교에서 받은 성적표와 상장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나비 떼와 오래된 다리미들,

윗부분이 닳아 없어진 모자들과

구름의 파편들.

그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절대로 풀 수 없는

정교한 퍼즐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없으면 꿈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무엇이 없으면 현실이 존재할 수 없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만성적인 불면증이 만들어낸 산물은

잠에서 깨어나는 모두에게 유용하게 배분된다.

꿈은 미치지 않았다.

미친 것은 현실이다.

비록 사건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완강히 저항하고는 있지만.

꿈속에서는 얼마 전에 죽은 우리의 친지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 아니 더 나아가

청춘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되찾은 채로.

현실은 우리의 눈앞에

죽은 이의 시체를 내려놓는다.

현실은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나는 법이 없다.

꿈이란 덧없는 연기 같아서,

기억은 그 꿈을 손쉽게 털어버린다.

현실은 망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현실이란 만만치 않은 상대다.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우리의 심장을 무겁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의 발아래서 산산이 부서지기도 한다.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매 순간 가는 곳마다 우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기에.

끊임없이 도망치는 우리의 피난길에서

현실은 매 정거장마다 먼저 와서 우리를 맞이한다.     



시단의 모차르트라 불리며 전 세계 독자의 사랑을 받는 그녀의 이 책은 1945년 등단작부터 2005년까지 60여 년에 걸친 시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선집입니다. 전집이 아니라서 아쉬운 거 말고는 없는 생각이 많아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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