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Jul 19. 2023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by 파블로 네루다

어느 한 시인이 있습니다. 그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족들과 빵을 먹는 식탁 위에서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간지에 실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칠레의 국민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입니다. 네루다는 굴곡진 라틴아메리카와 칠레 현대사의 문학 투사였습니다. 동시에 문학비평가 모든 시대를 통틀어 서구의 가장 고전적인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서정과 순수를 동시에 그린 시인이었습니다.      


평생 2500여 편이 넘는 시를 남긴 네루다는 순수 및 참여문학과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주체와 객체, 역사와 신화, 부드러움과 단호함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유연함으로 자신의 시에 대한 일반화를 거부했습니다. 네루다는 지역 일간지에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시를 연재하기로 하면서, 특이한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바로 문예면이 아니라 뉴스면에 시를 넣길 바랐습니다. 이렇게 연재됐던 그의 시는 독자들의 삶과 호흡하며, 몇 년간 인기리에 연재되었습니다. 시는 모름지기 모두가 함께 나누는 빵 같은 것이 되어야 하며 최고의 시인은 우리에게 일용할 빵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던 그는 이런 오랜 시적 신념이 마침내 가장 적절한 시의 형태로 구현된 것이 이 책입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기본적인 송가(Odas Elementales)입니다. 민중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그가 평생에 걸쳐 옹호해 온 가난한 민중에 의해 폭넓게 읽혔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에서 거장의 가장 야심 찬 작품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시는 알파벳 순서대로 정렬돼 있습니다. 공기, 포도주, 옷과 양파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에서부터 세상의 모든 감정까지 시에 담으려 하였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시로 쓰기를 바랐고 이 순서에는 어떤 위계도 차별도 없이 시인의 투명한 눈을 통해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옷과 토마토, 양파 등의 소박한 일상 사물에서부터 기쁨과 슬픔, 질투와 평온 등의 감정, 아메리카라는 땅과 세사르 바예호 같은 자신이 사랑했던 동료 시인, 여름과 비, 숫자, 게으름 등 그야말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을 시로 쓰려고 하였습니다.      


이 시집이 더 놀라웠던 거는 이데올로기적 논란을 비껴가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대중 독자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공공의 책무를 지닌 노동자로서의 시인이라는 정체성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버린 것도 아니었고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경제적 수탈을 비판하며 여러 정치적 폭력에 항거하였습니다. “연필에 침을 묻히며 태양과 흑판, 시계 혹은 인간 가족에 대한 글짓기 숙제를 시작하는 소년의 그것"이라고 했던 인터뷰를 보면 이 시의 시작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있습니다.           



기쁨을 기리는 노래     


매일 낮은

투명한 돌이었고,

매일 밤은

우리에게 흑장미였다,

그러므로 네 얼굴 혹은 내 얼굴의 이 주름은

돌이나 꽃,

혹은 어느 섬광의 기억이다.

내 눈은 너의 아름다움 속에서 닳아졌지만,

그러나 너는 나의 눈이다.

어쩌면 나의 입맞춤이 네 두 가슴을

지치게 했을 테지만,

누구나 나의 기쁨에서

너의 은밀한 광채를 보았다.     



제가 그를 좋아하게 했던 인터뷰 내용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러 스웨덴에 도착했을 때 지나가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낡을 대로 낡은... 사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특별한 시어를 사용하지 않는 그의 시 같은 멋진 이 대답이 저에게는 네루다 그 자체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과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