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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by 찰스 부코스키

제목이 우선 마음에 들었습니다. 직설적이면서 유쾌한 표현을 좋아하는 저에게 있어 바로 서점 책장에서 꺼내게 하였고, 책 페이지를 열자마자 몇 개를 읽고 저희 집으로 업어오게 되었습니다. 읽는 내내 재밌게 본 영화 중 하나인 <기사 윌리엄>이 떠올랐습니다. 중세 배경으로 현대적 요소를 섞은 이야기에 좋아하는 배우 히스 레저의 연기가 어우러졌던, 보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게 만들었던 그 영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재밌는 캐릭터가 한 명 나옵니다. 음유시인인 이 친구의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벌거벗겨 쫓겨나 노래를 부르다 히스레저를 만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살지만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언변술로 먹고사는 인물인데 가진 것은 없으나 원하는 것을 가지고, 집은 없으나 행복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떠도는 음유시인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습니다. 이 음유시인과 찰스 부코스키가 오버랩이 됐습니다.


작가의 시는 실험적이었습니다. 언어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점점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만큼 대중과 거리는 멀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마치 현대미술의 추상적인 미술 작품을 보는 듯했습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단순하고 웃기지만 가끔 뒤통수를 맞은 듯 통찰력이 보였습니다. 짧은 호흡으로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헤아릴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는

말이지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네.



미국 도서관에서 회수가 제일 안 되는 책은 잭 케루악의 책이지만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은 부코스키의 책입니다. 이십 대에는 소설을 썼고 삼십 대에 접어들어서는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는 우체국 직원이라는 신분 외에는 오직 주정뱅이, 노름꾼, 바람둥이로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타 주정뱅이와는 다른 점은 계속해서 시와 소설을 썼다는 것입니다. 부코스키는 수십 년이나 글을 써서 투고했습니다. 출판사, 잡지, 신문사, 문예지 등등 보낼 수 있는 곳에는 다 보냈습니다.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결실을 맺는 날이 찾아옵니다. 어느 작은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부코스키는 그 순간 이것이 우체국 일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될 수 있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직감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오십이었고 생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코스키는 고민 끝에 출판사에 “둘 중 하나를 택해야겠군요. 이 우체국에 남아서 미쳐버리거나 아니면 작가 놀이를 하며 굶거나. 전, 굶기로 했습니다.”라고 회신합니다.


그렇게 우체국을 그만둔 부코스키는 폭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첫 작품 <우체국> 은 출판사와 계약한 지 3주 만에 탈고한 작품이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그는 60권이 넘는 다양한 소설과 시집, 평론 등을 발표합니다. 그는 작가로서 꽤 인정을 받았으나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외부의 평가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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