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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꽃잎

by 김수영

탈고 일자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한 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과 작별하기 딱 일 년 전, 봄기운이 도는 5월에 3편의 시를 연달아 씁니다. 시 한 편을 쓰는데 일 년이 넘게 걸리기도 하는 작가의 글을 쓰는 스타일상 이런 일은 굉장히 이례적이기는 했지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4.19 혁명이 일어났을 때의 시 몇 편과 5·16 쿠데타 이후의 <신귀거래 연작>은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탄생했었습니다. 그래도 <꽃잎>은 이례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실이 급변했던 그 시간들과 다르게 1967년 5월에는 비교적 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수영 작가님 내면에서의 회오리가 쳤을 가능성이 높거나 아니면 시인들이 가끔씩 본다는 새로운 인식에 기인해서 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꽃잎 1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 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 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 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혁명 같고 먼저 떨어져 내린 큰 바위 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 같고



이 시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임종의 생명 같고’, ‘꽃잎 같고’, ‘혁명 같고’, ‘큰 바위 같고’, 홀로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이라는 표현들 때문입니다. 이 단어들은 김수영 작가님이 시 제목으로 따로 했을 정도로 평생을 고뇌하고 서러워한 테마들입니다. 그리고 이 시안에 모두 한 시에, 그것도 한 행에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한꺼번에 이렇게 그냥 적어 놓으신 건지, 아니면 1년 뒤에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셨기에 어떠한 결론을 내려고 하셨던 건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기에 저는 이 시를 보면 괜히 셜롬 홈즈에 빙의가 되어 여러 상상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시들은 비교적 자주 교과서나 수능시험에 단골로 나왔지만 <꽃잎> 만큼은 해석이 참으로 많아 실을 수 없었습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집에 없는 <풀>이라는 시입니다. 교과서 단골 시이자 수능 기출문제나 모의고사에 일 년에 몇 번 얼굴을 드러냅니다. 풀이 민중을 상징하고 바람이 외세를 의미한다는 국어교과서의 해석은 별로 흥미롭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시를 쓰고 김수영 작가님은 “무의미의 시”라고 못 박으셨습니다. 시는 모든 사람의 각자의 해석이 있기 때문에 난해해질 수밖에 없다고 늘 말씀하셨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으셨습니다. 시는 그저 가능한 한 많은 세계의 진실을 깊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 일뿐, 시인은 그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선택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굳이 의미를 껴안고 들어가서 그 의미를 구제함으로써 무의미에 도달하는 길을 김수영 작가님은 원하셨습니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독자들이 그냥 읽고 자신만이 느낀 그 감정을 고이 간직하길 바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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