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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다시 태어나다

by 데이비드 리프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작가라는 분들을 그렇게 느끼지만, 특히 더 그렇게 느껴지는 작가 중 하나는 바로 수전 손택입니다. 전방위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녀는 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이고 소설가였습니다. 이 책은 수전 손택의 일기입니다. 그녀가 죽기 전, 아들인 저자에게 자신의 일기가 있다는 걸 알렸고 솔직과 정직을 원칙으로 삼았던 고인의 뜻을 그대로 살려 신화로 포장하기 위해 보기 좋은 것만을 추리는 작업을 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싣게 되었습니다. 그중 이 책은 1947년부터 1963년도까지, 14살부터 30살까지의 이야기입니다

.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 중 하나는 그녀의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가 쓴 엮은이의 글입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평생 써온 막대한 분량의 일기를 언급하며 그 존재를 입에 올렸으나 어떻게 처분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불에 태워버릴까 고심하다가 책으로 출간하기로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손택이 일기에 적은 젊은 시절의 글은 대개는 두서없고, 지적 열망에 시달리느라 읽을 것들을 나열하며 느낌표를 반복해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24번째 생일을 앞두고 <규칙과 의무들>이라는 제목 하에 자세를 더 곧게 하라든가, 일주일에 세 번 엄마에게 전화하라, 또 더 적게 먹어야 한다는 규율 같은 개인의 사사로운 메모들까지 적혀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들로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손택의 동성애에 대한 글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아들에 대해 “평소에는 그다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산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바로 뒤에 “그 애만큼 정신적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현실적인 사랑의 대상이니까”라고 적기도 합니다. 

     

사회적 명망으로 둘러싸인 신화를 조금은 거두고 읽어야 하는 이 책은 그녀가 봤었던 영화나 책 음악들이 나열되어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읽어야 할 책, 궁금해지는 음악이나 미술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접해야 할지 적어놓았습니다. 학자 혹은 지성인의 기록으로 읽기보다는, 미지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불타올라 때로 막무가내로 부딪히고 상처받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발견해 가는 청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녀의 일기를 보면서 저도 적는 습관들이 바뀌었는데, 문장으로 이루어진 메모를 했었다면 지금은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다시 봐도 알아보게끔, 그리고 솔직한 감정들을 적어보려고 노력합니다.           



P :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자유, 즉 정직이라고.


P : 내 존재의 만족스러운 부분만 기록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P : 도덕이 경험을 형성한다.     


P : 원치 않는 상대에게 항복해 심장을 받치지 말라.      


P : 언어는 얼마나 섬세한 도구인가?     


P : 태도와 가치는 구분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천재로만 여겨지기에는 다 표현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고, 영화도 많이 봤으며, 음악이나 미술 쪽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남들 눈에서 바라보는 세상보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더 중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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