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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by 생텍쥐페리

이 책은 생텍쥐페리가 열 살이 되던 중학교 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어머니에게 보낸 103통의 편지와 가족에게 보낸 7통의 편지를 그의 어머니가 엮은 책입니다. 진정한 행동주의자였던 생텍쥐페리는 창공에서는 자유를 느끼고, 불의와 의미 없는 전쟁을 막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앞에선 수학 성적을 걱정하고, 생활비를 보내 달라 조르고, 비행 때 너무 추워 울었다며 위로받기를 원하는 어리광 피우는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작품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작가의 사적인 성장일기를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 책에는 ‘사랑과 존경’이라는 문구가 항상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맨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는 짧은 문구에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생텍쥐페리의 진솔한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철자가 엉망이던 꼬마시절을 지나 기숙사 학교에서 한창 대입 준비 중인 수험생에서 전쟁이 끝나길 바라며 가족을 걱정하는 조종사, 그렇게 작가이기 이전에 한 남자이자 누군가의 아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 읽고 있으면 종이 밖을 뚫고 나오는 사무치는 외로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제 편지를 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엄마, 제가… 엄마를 안아드리는 것처럼 저를 안아주세요.”라며 절절한 전상서를 적기도 하였습니다. 로맨틱한 프랑스인이고 편지가 주요 통신수단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보다 생텍쥐페리가 편지에 매달렸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고 결혼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P : 날씨가 스산합니다. 그래도 일요일에는 오를리 공항에서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비행이었어요. 엄마, 전 이 일을 너무 사랑합니다. 비행기 엔진과 단 둘이 마주 보며 4,000미터 상공에 있을 때의 그 고요함, 그 고독을 엄마는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서 느끼는 현장에서의 멋진 동지애도 말입니다. 우린 자신의 비행 차례를 기다리면서 풀밭에 누워 있다 잠이 들곤 합니다. 

-1924년 파리에서 보낸 편지     


P : 자나 깨나 9월에는 돌아가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 한 명이 포로로 붙잡혀 있는 이상, 그가 위험에 처해 있는 한, 여기 남아 있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전 꿈을 꿉니다. 꿈속에는 식탁보가 깔려 있고, 그 위에 과일이 놓여 있으며, 보리수 아래서 산책을 하는 생활과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총을 쏘는 대신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안갯속에서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데도 그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끝도 없는 사막 대신 하얀 자갈 위를 걷고 있는 그런 꿈입니다. 그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있군요!

- 1928년 쥐비에서 보낸 편지          



마리 드 생텍쥐페리 여사는 아들을 잃고 오열하였습니다. '주여, 제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셨나요?/아이를 낳던 날/ 전 울부짖었습니다. 그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려고/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울부짖습니다. 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 어떤 것도, 무덤조차도 저는 모릅니다….' 그의 편지들을 모아서 출판하려 했던 출판사들은 마리 여사를 설득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1955년과 1969년 두 차례 생텍쥐페리의 어머니 마리 여사와 함께 출판한 서간문 모음집인 이 책은 몇 편의 편지를 추가하는 등 보완을 거쳐 새로 발간한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마리 여사의 서문이 끝나면 몇십 쪽을 할애해 생텍쥐페리의 대략적인 삶을 편지 인용과 함께 빠르게 보여줍니다. 그러고 350여 쪽에 달하는 편지의 원문들을 시간 순서대로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갈리마르 출판사와 생텍쥐페리 재단과 모든 절차를 완료한 끝에 나온 이 책은 출판사와 번역자의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원서는 기본적으로 생텍쥐페리 편지의 실물이나 그림들을 일부 싣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번역본은 원주뿐 아니라 추가적인 주석을 더 달았으며, 편지에 나오는 장소들을 번역자가 직접 찾으며 찍은 사진들이 여러 장 실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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