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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산책자

by 로베르트 발저

로베르토 발저를 사랑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휴양지에 항상 그의 책을 넣고 다녔고, 카프카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자는 가정 형편 탓에 정규 학업을 마치지 못했고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 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종이조차 살 수 없는 궁핍한 생활 중에도 영수증, 전단지, 포장지, 달력 뒷면에 글을 썼고, 작품을 끊임없이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습니다. 또 그는 이러한 생활을 그대로 작품의 소재로 삼기도 했는데 단편 <최후의 산문>에서는 독자 없는 작가의 삶을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로 이름을 얻은 뒤에도 이른바 지식인 사회와 가깝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27년을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을 했고, 정신병원에서 걷기와 쓰기에 강박적으로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산책에 나섰다가 눈 위에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남긴 수백 편의 작품 중에서 그를 대표하는 중단편 소설 42편을 옮긴 것입니다. 그의 작품 모티브이자 실제 삶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걷기와 쓰기였습니다. 그에게 산책은 잠시나마 우울을 떨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자신의 내면을 거니는 행위였습니다. 발저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듯 단편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그는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라고 썼습니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자기부정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여행을 연상시키는, 그래서 전체적인 삶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짐짓 과장된 어조로 자신의 무력함과 초라함, 그리고 그것을 업신여기는 세상을 자조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남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군중 속을 홀로 거닐며 작은 것들을 관찰하는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촘촘히 박혀있습니다. “삶이 내 어깨를 붙잡았고, 비범한 시선으로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거나, “내가 본 것은 작고 빈약했으나 동시에 위대하고 의미 깊었으며, 소박하지만 매혹적이었고, 가까이 있으면서 훌륭했고, 따스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같은 문장들이 부서질 것 같으면서도 단단한 그의 내면을 엿보게 해 주었습니다.      



P : 아침의 꿈과 저녁의 꿈, 빛과 밤. 달, 태양 그리고 별.


P : 한 번이라도 가난하고 고독한 신세를 경험해 본 자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타인의 가난과 고독을 더 잘 이해한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 타인의 굴욕, 타인의 고통, 타인의 무력함, 타인의 죽음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므로 최소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           



헤르만 헤세와 같은 동시대 문인들의 지속적인 언급에 의해 작품들이 재출간됐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연구했습니다. 현재 발저는 20세기 독일 문학사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인 작가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위치에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의 글이 굉장히 독특해서 좋았습니다. 절대 플롯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성 풍부한 문장이 자유롭게 흐르면서도 섬세해서 글을 읽는 제가 홀린 듯이 그 글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번역을 맡으신 배수아 작가님도 “이 번역이 힘들 만큼 기묘했다. 광적일 만큼 현란하게 아이러니하고 달빛 비치는 차가운 밤이면 내면의 황야를 홀로 가로지르는 고독한 왈츠(Walzer)가 됐다. (…)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됐다.”라고 하셨습니다.     


 

P : 그의 산책이 곧 그의 글이 되었다. 걷기는 그의 스타일을 구축한 육체였다. 걷기를 통해서 “그는 어디서나 살았고, 그 어디에서도 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글 안에서 “하나의 내면이 되었고,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 배수아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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