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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내 방 여행하는 법

by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저는 여행을 할 때 미리 목적지를 정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빠른 길이 아닌 골목골목 빙 둘러 가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가끔은 목적지까지 가야 할 이유마저 접어둔 채 책 읽기 좋은 카페의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커피 한잔 여유를 즐기며 시간 속을 유영하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풀어두는 이런 시간을 바라 일상을 떠나 멀리까지 여행을 가는 게 제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굳이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그런 여행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문학, 회화, 음악 등에도 두루 관심을 보였던 직업 군인인 저자는 42일간 자신의 방에 머물며 이 책을 썼습니다. 직접적으로는 어떤 장교와의 결투로 인한 42일간의 가택연금형 때문이지만 저자는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의 이상한 여행기는 흔히 생각하는 여행기와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그의 방에 있는 놀라운 볼거리에 대한 서술을 기대한다면 100프로 실망하실 겁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작가의 영혼과의 사색입니다.      


의자와 침대에서 건져낸 사색과 벽에 걸린 초상화를 통해 되돌아간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 애견 로진과 하인 조아네티에게서 느끼는 연민과 감사,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과 철학적 사고가 이 책에 있습니다. 익숙한 것에서 사색이 시작되고 일상과 사물에서 영혼을 불러내거나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과 신체와의 관계에 대해 관찰하고 탐구합니다.      


그의 영혼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작은 방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이란 어딘가를 가서 경험했던 감각적인 것, 타자의 경험이 아니라 영혼이 고양되고 기쁨을 누렸던 순간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어떤 성찰과 사색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임을 자각시킵니다. 그의 즐거움은 조아네티가 커피를 끓이는 순간과 같은 소박한 것들에서 비롯됩니다. 여행의 즐거움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지금 나의 주변을 둘러보라고 말을 합니다. 어딜 갈까 고민할 사이에 내 주변의 사물을 다시 주목해 보라고,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추억을 건져내라고, 어디서든 자유로운 사색이 가능하다면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P : “물이 끓는 동안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앞서 독자 여러분에게 말한 바 있지만 나는 이렇게 선잠 들 때의 아늑한 기분이 참 좋다. 조아네티가 커피 주전자를 화로의 쇠받침 위에 올려놓을 때 나는 소리도 참 듣기 좋아서 그 소리에 나의 뇌리와 나의 모든 신경도 공명한다. 그것은 마치 하프의 현 한 줄을 튕겼는데, 8도 음정의 소리가 한꺼번에 울리는 것과 같다.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눈을 뜨니 조아네티가 서 있다. 음, 이 커피 향! 자연이 준 멋진 선물이다. 커피와 크림 그리고 토스트 한 조각. 친애하는 독자여, 이리 와서 아침을 같이합시다."          



사실 책의 내용은 별거 없습니다. 누구나 집에 가지고 있을 법한 침대, 의자, 거울 등등을 자신의 방식대로 느끼며 책에 풀어쓰고 있습니다. 별거 없다고 했지만 이게 전부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보고 만지고 사용하는 물건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행복함과 기쁨을 느낀다면 수십,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눈을 저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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