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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울프 일기

by 버지니아 울프

“오래된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검열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거나 쓰는 것이다.” 누군가 그리고 언젠가 저에게 해준 말이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노트를 사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빗속을 뚫고 새 노트에 굳이 쓰려고 했을 정도로 좋았던 이 한 문장을 다시 이 책에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하루에 몇 글자 적기로 마음을 먹어 그 안을 채우는 걸 몇 년째하고 있습니다. 매일 쓰지는 못하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편하게 쓰기도 하고 일상의 연속일 경우 감정을 한번 들춰보고 한 줄이라도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기의 좋은 장점은 나 자신을 속일 이유도 없이 제가 쓰고 싶은 말을 쓸 수 있다는 점, 즉 그 안에서만큼은 진솔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제 안에 있는 것을 가감 없이(욕도 써가며)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기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읽기가 좋으면서도 조금 두렵기도 한 이유입니다.     


우선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스물여섯 권의 공책으로 남긴 방대한 일기를 남편 레너드 울프가 편집한 책입니다. 주로 문필 관련 부분만을 추렸고 이 안에서는 그녀가 언제 행복한지를, 왜 노심초사하는가를, 정신적 물질적 자립이 피가 마르는 고역의 결실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책에서 놀랍던 부분은 일기 안에서도 그녀답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에 관하 이야기를 한 부분에서는 가차 없이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생각을 해보면 그녀의 남편이 직접 편집 검열을 하였다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실제 일기 안은 어땠을지 더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우선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그녀의 혹평은 놀라웠습니다. 그녀보다 먼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소설에 도입해 당시 문단을 뒤흔든 제임스에 대한 놀람과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초등학교 풋내기 생각이 났다. 재기와 능력은 충분히 있지만, 자의식 과잉에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잘난 체하고, 소란스럽고, 차분한 데가 없고, 선의의 사람들로 하여금 안 됐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엄격한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따름이다. 우리는 아이가 커서 지금처럼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조이스는 40살이니 그럴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대 놓고 디스를 하기도 합니다.     



P : 나는 그동안 많은 생각을 해왔고, 또 좋은 생각도 좀 모아두었다. 어쩌면 나는 다시 정상에 서 있어, 앞으로 두서너 권의 책을 재빨리 써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다시 쉰다. 적어도 나는 계속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공허한 느낌은 없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집에 들어가 기번에 관한 내 메모를 가지고 와서, 평론을 쓰기 위한 계획을 꼼꼼히 세워보자.      


P : 내 모든 행복은 당신이 있어 가능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한없이 참을성이 있었고, 또 믿을 수 없으리만치 잘해 주셨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누가 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었을 거예요. 이제 나에게선 모든 것이 떠나고, 당신이 착했다는 확신만이 남아 있어요. 더 이상 당신의 인생을 망칠 수는 없어요. 나는 어느 두 사람도 우리만큼 행복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책 안에 그녀의 작품들이 어떻게 형성해 가는지 머릿속으로 어떠한 생각을 해서 글들이 나오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만의 방>에서 주창한 “정신적 물질적 자립에 따르는 행복한 고역”을 수용함을 이야기하는데 조금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글 쓰는 날마다의 일이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진다고 고백을 할 정도로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본인이 좋아서 시작한 선택적 삶이었을지 모르지만 뼈를 깎는 행복한 고역의 순간이 많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 과정은 그녀에게 천형 같은 두통과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심화시킵니다. 고통과 두려움에 치이는 고독한 순간들이 일기에는 수두룩해 그녀가 안타깝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돌려 까기가 일절 없는 솔직함에 대해 손뼉 치면서도 일기 안에서 꾸준히 문체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실험 공간으로 몰아넣은 그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던 그녀의 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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