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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파리는 날마다 축제

by 어니스트 헤밍웨이

관련성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2015년 11월 13일에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사건 이후 헤밍웨이의 유작인 이 책은 저항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조금은 뜬금없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젊은 시절 파리에서의 생활을 추억하면서 쓴 것인데 사실 원제인 <A Moveable Feast>는 헤밍웨이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조금 낯선 A.E 허츠너라는 작가가 붙인 것인데 헤밍웨이가 죽고 나서 그의 네 번째 부인 메리가 출판에 앞서 책의 제목을 정하기 위해 허츠너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책 에필로그에 헤밍웨이는 어떤 친구라는 표현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허츠너였습니다.      


이 책은 전업 작가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헤밍웨이의 이야기입니다. 유작이라 몇십 년 전 일을 기억해 내야 했는데 묘사는 더없이 생생했고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으며 재미있습니다. 1920년대 파리는 문화적으로 어마어마했던 거 같습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동경하는 바로 그 시대인데 청년 헤밍웨이는 당시 문학 대모로 여겨지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서 피카소도 만나고 은행원이던 T.S 엘리엇에게 시만 쓰게 하기 위해 친구들과 돈을 모으는 낭만적인 모습도 있었고 그 당시만 해도 존경하고 친했던 스콧 피츠제럴드와 낮부터 술을 마시며 절친이었던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성공 이후 두 사람은 멀어졌지만 그 당시 서로의 글에 응원을 하며 동지애의 모습을 보입니다.      


가난한 청년의 삶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많은데 지금도 있는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서점인 “셰익스피어&컴퍼니” 에서 책을 빌리러 간 헤밍웨이는 보증금이 없어 쩔쩔맵니다. 착한 점원이 그냥 빌려주겠다고 하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파리에서의 시간을 투명하고 아름다운 시절로 추억하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부인 해들리에 대해 얘기할 때 특히 그렇게 느껴졌는데 둘은 그림을 모으고 겨울에는 작은 오두막에서 스키를 타며 밤에는 사랑을 나누고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여름을 보낼 생각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른 여성을 사랑하게 된 바람둥이였고 그 사건에 대해 적어 놓은 짧은 참회(?)의 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약간은 쓰리고 담담한 그 글은 잊혀지지가 않는데 이유는 그 짧은 두 세 페이지밖에 안 되는 그 글 안에 후회마저 삼켜버릴 정도의 깊은 슬픔과 회한을 느낄 수 있어서였습니다.           



P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책의 후반부에 있는 “nada y pues nada”(아무것도 아니야, 아냐, 아무것도)라는 뜻의 스페인어는 그가 세상을 등지기 석 달 전에 적은 글입니다. 생뚱맞게 스키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헤밍웨이는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중략) 가슴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가슴 찢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슴이 있는 사람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라고 말을 합니다. 마음이 아주 오래 쌓였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야.”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헤밍웨이의 노력을 많이 닮고 싶습니다. 그의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인 “나는 오늘도 일곱 자루의 연필을 해치웠다.”를 많이 생각합니다. 자신의 노력의 평가를 페이지 수가 아닌 연필로 계산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읽고 노트에 좋았던 글과 제 생각이 많아져 노트가 채워지는 날이 사실 더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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