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Jul 19. 2023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by 무라카미 하루키

제가 좋아하는 스페인 와인 중에 Els Jelipins(알스 헤리핀스)라는 와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재배하지 않는 Sumoll이라는 포도품종이 들어가 있어서 많은 양의 포도주를 생산할 수가 없는 이 와인은 라벨이(레이블) 없습니다. 심지어 이름에도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단어가 검색이 안 됩니다. 나중에 겨우겨우 찾아보니 와인 만드신 양조장님 딸이 어렸을 때 동화책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요정의 이름을 따왔고, 그림도 병마다 하나하나 따로 그립니다. 와인 맛도 충격이었는데 유래에서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창의적이지 못한 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없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볼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애청자인 저는 사자가 풀떼기를 먹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라는 문장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자리에서 책을 집어 계산한 후 카페에 앉아 한 번에 쭉 읽어서 다시 또 더 읽었습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앙앙>이라는 잡지의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코너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모든 에세이의 양이 모두 2장 정도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고 삽화가 한 페이지씩 들어가 있습니다. 제목에 걸맞게 샐러드를 먹고 있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사자의 모습이 표지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가볍기 때문입니다. 책의 무게뿐 아니라 소재도 가볍게 다루어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화두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에세이를 마무리하는데 저는 그 점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분명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일부러 그곳에 멈춰서 우리들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일부러 여백을 남겨놓은 듯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라고 일부러 남겨 놓은 그의 배려에 빠르게 읽히지만 카페 밖 창문을 바라보며 조금 더 생각하게 합니다. 채식을 좋아해 샐러드를 커다란 양푼으로 한가득 먹을 수 있다는 샐러드 이야기를 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저도 모르게 그가 샐러드를 아구아구 먹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일하다 산책 나오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복 차림으로 맥주 집에 다니는 그의 모습이 상상이 되는 이 책은 편안한 소파에 누워있는 거 같았습니다.           


P : 이런 연재를 하고 있으면 "매주 용케도 쓸거리가 있군요. 화제가 떨어져서 곤란한 적은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P :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 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 : 재즈가 초밥집 배경음악이 되다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재즈라는 것은 어쨌거나, 자, 재즈를 듣자, 의식하고 진지하게 듣는 음악이었달까,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수자를 위한 예민한 음악이었다.           



무라카미 라디오라고 해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려 찾아보았지만 사실 그는 일본의 TV나 라디오에 출연한 적은 없습니다. 최근에는 인터뷰 의뢰가 있어도 일부의 신문과 잡지를 제외하고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습니다. 인터뷰가 싫은 이유로 본인은 재즈 카페를 경영하던 시절에 "매일 밤 고객을 상대로 평생 분의 대화를 했다. 앞으로는 정말 대화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말하겠다고 맹세했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신기한 점은 해외 매체의 인터뷰에는 열정적으로 응하고 있는데 그중 열몇 편은 번역되어 인터뷰 모음집 <꿈을 꾸기 위해 매일 아침 저는 눈을 뜨는 겁니다.>이 있고 해외에서는 서점 사인회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는 날마다 축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