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Jul 27. 2023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by 실비 제르맹

프라하라는 말만 들어도 아직 가슴이 뛰는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은 인기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아마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싼값에 명소들을 볼 수 있기도 하고 개성 강한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남아있어서 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울려져서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프라하라서, 이곳을 이야기할 책들은 끊이지 않고 나올 거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프라하라는 제목이나 그에 관련된 책들이라면 주저 없이 손이 가서 책장 한켠을 계속 채울 거 같습니다. 사실 이 책도 서점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프라하라는 이름 때문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프라하가 주는 신비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받는 와중에 그녀는 왜 울고 다닐지가 궁금했습니다. 사랑이 넘치고 예술적인 프라하 거리에서 그녀는 왜 울고 있을지 호기심에 책을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울고 다닌다는 그녀가 누구였는지가 제일 궁금했는데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엄청나게 큰 거인으로 다리를 쩔뚝거리는 그녀가 책 속으로 들어왔고 또한 그녀가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려줍니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녀는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그녀가 나타나는 곳은 오직 프라하라는 것뿐입니다. 그녀가 나타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평소에는 진지하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고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그녀가 왜 우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불가능합니다. 그녀의 울음은 보통의 사람들이 우는 것과 다르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이기 때문입니다. 



P : 사실 그 여자는 전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 속에서 흐르는 피가 귀에 들리지 않게 잉잉대는 소리가 문득 들리게 된 것인 양, 물기 있는 속삭임이 그녀의 몸 저 속으로부터 나직하게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심장이 뛰는 소리였을까? 그것은 그녀의 살이 속에서 떠는소리였을까? 아니면 살갗이 떨리는 소리였을까? 그렇지만 그 무슨 이기지 못할 고통 때문에?



그녀를 만나는 것은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사실들을 하나씩, 혹은 둘씩 알아갑니다. 다섯 번째 만남이었을 때, 어린아이의 시를 듣게 됩니다. 그 아이는 테레진의 어린아이였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수용소로 사용했던 장소로 약 14만 명의 유대인이 수용됐던 곳이고 3만여 명이 이곳에서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도 아우슈비츠 등으로 이송되어서 얼마나 죽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전쟁이 끝났을 때 채 2만여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살아남은 곳이 바로 테레진입니다.



P : 미풍은 한 어린아이가 쓴 그 시의 낱말들을 아주 낮게, 아주 아주 낮게 웅얼거리고 있었다. 테레진의 어린아이가, 거기에 있지 않은 지 벌써 오래된 어린아이가 쓴.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그러나 사람들이 재에게, 바람에게, 구덩이에게, 망각에게 넘겨줘버린 한 작은 어린아이가 쓴.



이쯤 되면 그녀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프라하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것일지 더 궁금해집니다. 혹시 그녀 자체가 곧 프라하가 아닐지, 또는 프라하의 영혼은 아닐지 나름의 추측을 하게 됩니다. 책을 덮을 때 즈음에는 그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를 따라가는 건 프라하의 아픈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는 것이고 이 책을 펼친다는 것은 상처를 공유하겠다는 주문을 외는 것과 같습니다.



P : 한순간, 아주 짧은 한순간, 도시 전체가 거인여자의 무릎 위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그녀의 품 안에서 포근히 감싸였다. 그리고 그녀의 배에서, 대지와 그 뿌리의 깊은 태 속에서, 우유맛이 나는 눈물의 종소리를 내는 심장에서 솟아오르는 노래가 그 도시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왜 울고 다니는 걸까요? 위로나 연민으로 불러도 될지 생각하는 와중에 울고 있는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단 한순간이라도 그 차가운 곳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것이기에 어떻게 불러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그녀가 울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프라하는 어제의 프라하를 마주 보며 울고 웃으면서 서로를 감싸 안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랑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