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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04. 2023

아우스터리츠

by W.G. 제발트

이 어린아이의 어색한 표정과 옷차림으로 된 표지 사진은 전 세계 모든 판본이 같습니다. 저자인 제발트가 내건 조건 중에 하나로 표지는 이 사진으로만 지정하였는데, 이유인즉 아마 이 사진 한 장으로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목에도 많은 추측들이 있는데,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이 나폴레옹 시대의 격전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서입니다. 이 대답은 확실하게 작가에게 들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번역하고 역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리엔바트의 아우쇼비츠 샘물, 테레지엔슈타트의 바우쇼비츠 분지 등과 함께, 소설 속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집단 학살지 아우슈비츠를 암시할지도 모릅니다.


수전 손택이 오늘날에도 문학이 가능하다고 한 이유를 제발트의 존재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작가의 생전 마지막 소설입니다. 이 책에는 주인공을 통한 거리 곳곳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의 디테일하게 나와있습니다. 저자가 발품을 팔면서 도시, 인물, 그 안의 작은 움직임, 사람들의 미세한 움직임 심지어 바람, 구름, 해, 비 등 모든 자연의 속삭임 또한 글로 놓치지 않고 들어가 있어서 엄청난 노력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 그 안에는 실제와 허구가 뒤섞여 있는데, 책 안에 사진들이 즐비하게 있어 실제 이야기인지 아님 픽션인지 읽는 내내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은 히틀러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1938년부터 39년까지 유대인 어린아이들을 영국으로 피신시키는 구조운동이 일어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아우스터리츠 역시 1938년부터 39년에 1만 명의 어린이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영국 목사인 양부모는 그의 출신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주인공 자신도 20세기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주인공이 건축가가 되어 막연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기억해 내고 진실을 찾으러 갑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보면, 주인공 개인의 기억 확대가 아닌, 당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1만 명의 기억이자 히틀러 시대의 모든 유럽인의 기억 확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P : 실제로 내가 미혹당한 사람처럼 한가운데 서 있었던 그 대합실은 마치 내 과거의 모든 시간과 이전부터 억눌리고 사라져 버린 불안과 소망을 포함하고 내 발아래 돌로 된 바닥의 검고 흰 다이아몬드 무늬가 내 생애 마지막 게임을 위한 운동장인 듯한, 시간의 전 차원으로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P : 모든 지나간 세월을 넘어 스스로에게 익숙한 삶에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 자신이 고립된 아이임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그때 이후 나 자신에 의해 억눌려 왔지만 이제는 강력하게 몰려오는 쫓겨난 존재와 지워진 존재라는 느낌 앞에서 이성은 속수무책이었어요.



결국 마지막에 주인공은 어머니를 기억해 냅니다. 한 강제수용소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며 책은 마무리가 되는데, 당시의 참혹했던 모습을 너무나 생동감 있어서 작가의 미친 필력에 한번 놀라고, 길게 늘어뜨린 문단을 자연스럽게 읽히게 하면서 또 한 번 놀랍니다. 솔직히 시작 부분은 조금 지루함이 없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연상시키고, 내용 자체가 워낙 슬퍼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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