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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17. 2023

베토벤의 생애

by 로맹 롤랑

기억에 남는 서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 미도파 백화점 건너편에 있었던 그 서점은 명동 입구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외국 서적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 그 서점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오로지 책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조각가 부르델의 작품집을 한 권을 싸게 샀다며 좋아하셨고 저는 어린이 그림책 한 권을 사 왔는데 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친구랑 보기로 했던 카페에 들어가 코코아를 마시며 부르델 작품집도 보게 되었는데 어느 한 곳에서 베토벤의 모습들이 보여 멈췄습니다. 어머니는 친절하게 아까 서점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이 이 사람이 만든 것이라며 설명해 주셨고 그때부터 아마 베토벤이란 이름은 위대함보다는 달콤한 코코아향에 덮인 추억의 사람으로 친근하게 기억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그 책을 다시 보았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친근해 보이던 베토벤의 그 사진은 절망과 좌절과 열등감과 분노와 열정과 슬픔과 고독이 뒤범벅되어 있는 표정이었고 그 사진만을 보면 제가 가지고 있는 절망과 두려움과 분노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우연찮게 만나게 된 베토벤이라는 이름만 보고 이유 없이 그 서점과 함께 베토벤 청동 두상의 사진이 스쳐 지나갔고 구매욕을 잘 누르고 살던 저도 참을 수 없어 이 책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롤랑이 쓴 것입니다. 베토벤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남겨진 기록과 증언들, 초상화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은 베토벤의 마음을 역시 사로잡았습니다. 베토벤은 꿋꿋하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이미 그때부터 귓병이 괴롭혔습니다. 베토벤 역시 영웅에 심취했었고 이는 나폴레옹을 위해 쓴 <영웅 교향곡> 에도 드러났습니다. 베토벤의 친구들이자 지지자였던 베겔러 부부와의 서신, 또 사랑했지만 결국 파혼하게 된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 이 곡은 <열정 소나타>는 테레제의 오빠 프란츠에게 헌사되었습니다, 괴테와의 만남, 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 조카 카를에 대한 어긋났던 사랑, <환희의 송가에 의하여 합창을 종곡으로 한 교향곡>, 등등 노래 제목조차 잘 모르는 제가 하나씩 찾아보며 아 이 노래하는 명곡들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습니다. 심지어 초연 당시 압도된 빈의 청중들에 관한 이야기가 베토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 상황까지 설명하며 무대를 마치고 박수로 베토벤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뒤에는 베토벤이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유서, 그의 사상 단편을 엿볼 수 있는 메모들, 그리고 1927년에 롤랑이 베토벤 1백 주면 기념제를 위해서 낭독했던 원고와 작품에 대한 베토벤의 수기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짧은 책이지만, 고난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음악가로서의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했습니다.


P : 베토벤의 부드러운 눈과 그 눈이 지닌 깊은 슬픔을 보고 울고 싶어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고 했다.


P : 베토벤의 넋에는 청교도적인 그 무엇이 있었다. 추잡스러운 회화나 사상을 그는 소름이 끼치도록 싫어하였다.


작가는 독일 태생 천재 음악가의 생을 다룬 위대한 대하소설 <장 크리스토프>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롤랑에게 장 크리스토프에 대한 모티브를 주었음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는 영웅을 숭배했고 그러한 열정은 베토벤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와 톨스토이의 전기를 쓰는 것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음악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베토벤은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위기 속을 헤매던 청년 시절에 가슴속에 영원한 삶의 불을 붙여준 것은 베토벤의 음악이었다."라고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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