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서관

<바나나, 냉장인가 하는 그런 걱정>. 7화

by 유우진

도서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도서관은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중간 중간 휴대폰을 보고 있는 학생들,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 노트에 뭔 갈 적고 있는 학생들, 엎드려 부족한 잠을 충전하는 학생들까지.

마냥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생들이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이용해본 도서관의 느낌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책장 중에 가장 높다란 서가에 책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중, 고등학교의 서가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공부를 위한 열람실보다 서가가 위치해 있는 자료실을 더 좋아했다.

우선 조용하고 남들과 가까운, 비교적 쉽게 마구 움직이지 못하는 열람실은, 답답함을 느낄 때 도망할 곳이 필요한 나에게 아주 취약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혹여 그런 곳에서 깜빡 졸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잠꼬대를 하진 않을지 또 걱정했으므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또 그런 나를 원망했다.

그래서 나는 보통 크게 뚫린 자료실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공부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혹시 답답하거나 잠시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 싶을 땐 크게 내 옆을 막아줄 장서을 휘휘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혼자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공부할 것은 따로 없었지만 ‘책이라도 읽어볼까‘. 하며 장서 깊숙이 숨겨진 테이블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가운데 책상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뜻했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아서 묘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앞에 누가 앉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머리를 한 쪽 손에 움켜쥐고 열심히 노트에 무엇인가를 필기하고 있었다. 종종 안경을 다시 추켜올리기도 하고 필통에서 다른 색의 볼펜을 꺼내 들었다.







‘이 사람처럼 뭔가에 몰두한 적이 언제 였나‘ 싶었다. 사실 당장 지난 학기는 나에게 애증의 학기라, 내 몸 하나 붙들고, 내 온전한 정신을 끌어 안아 주기도 버거웠던 때이기 때문에 성적에 몰두하지 못했다. 사실 성적 뿐 아니라 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몰두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도 없고, 지쳐만 갈 뿐이었다. 문득 내가 몰두했던 때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부터. 음. 뭐가 있더라.

언젠가는 글쓰기에 몰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글 모두 한 번도 끝을 낸 적은 없었다. 언제나 내가 늘 상상했던 첫 번째 챕터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두고두고 쓸 작정으로.

또 어떤 것이 있나, 생각보다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이제 내가 몰두해 보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못한 것을 앞으로 해볼까. 순간 무엇이라도 적고 싶어 종이와 펜을 빌려 보기로 했다. 대출 반납 데스크에 가 물어보기로 했다.







앞에서 열중하는 멋진 청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조심히 의자를 들어 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스크로 가면서 한 가지 생각을 더 떠올렸다.

그냥 막연히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려고 하니 기준이 필요할 것 같아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참고하기로 했다. 우연히도 도서관 안에 있으니까 참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기분으로.도서를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를 찾았다. 내가 도서를 하나 찾기 위해 가지고 있는 힌트는 ‘버킷 리스트’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참고하는 리스트로는 버킷 리스트가 제격일 것 같았다.

제목, 저자명 등은 애매 했으므로 고급 검색에 키워드로 ‘버킷 리스트’를 검색했다.







잠시 화면속 도르레가 돌더니 수많은 책들이 주르륵 흘러 나왔고 나는 그중에서 제목만으로 내 시선을 끄는 도서를 하나 골라 청구기호를 비치되어있는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데스크로 가 혹시 종이와 볼펜을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작은 덜그럭 소리 후에 직원이 종이 한 장과 검은색 볼펜을 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작은 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메모지 위의 청구기호를 작은 소리로 읽으며 과연 이 책이 내용으로도 나를 사로잡아 최종 선택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도서를 찾아 나섰다.






내가 가끔 책을 읽고 싶은 순간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더 자세히는 마땅히 콕 집어 읽고 싶은 책은 없을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만약 내가 그 중에서도 여행 도서를 읽고 싶은데 뭐 딱히 아는 책은 없을 때, 키워드나 제목에 ‘교토’와 같이 지명을 지고 도서를 검색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골라 찾는다. 혹시 막상 책을 골라 들었을 때 생각보다 유혹적이지 않다면 다시 꽂아 넣고 그 주변을 살피면 된다. 그 주변엔 비슷한 분류로 묶인 책들이 함께 놓아져 있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운이 좋다면 내 맘에 드는 책을 찾는데 성공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운이 따라주길. 마음속으로 ‘버킷 리스트’를 외치며 내가 원하는 도서의 조건을 하나하나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세부 조건은 내가 참고할 만한 버킷리스트가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적은 청구기호의 그 책은 내 후보에서 밀려났지만 그 주변의 다른 책을 몇 번 뒤적인 결과 나는 운이 좋게도 마음에 그럭저럭 드는 책을 고를 수 있었다.






고른 책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내 앞의 사람은 무섭게 본인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왜 인지 그 사람을 따라 나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쳐 들었다.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기 위해 후루룩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맨 뒷장을 보니 작가가 적어놓은 본인의 버킷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영화에 출현해보기, 태국에서 요가 클래스 듣기.... 등등 각양각색의 항복들이 적혀 있었고, 그중 나는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실현 가능한 항목들을 적어 보기로 했다.

우선 가장 먼저 적은 것은 태국에서 요가 하기를 조금 변형한 것이었는데, 나는 ‘필라테스 6개월 꾸준히 도전하기’를 적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나의 어둠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을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운동을 해보았던 결과, 적어도 운동하는 그 순간만큼은 다른 것들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기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 운동을 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내 자신이 너무 싫을 때, 못해도 외적인 부분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꾸면 나를 사랑하는 데 좀 도움이 될 까 싶었다.







두 번째 버킷 리스트는 ‘타투하기’였다. 이것은 책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영구적으로 내 몸에 새기는 타투를 하면서 계속 상기시키고 싶었다. 괜찮다고, 숨을 쉬라고.

세 번째 버킷 리스트는 사진첩 만들기 였다. 오늘 산 카메라도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보정하는 법을 배워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보고 내가 기억할 수 있게, 불안하면 안중에도 없이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나에게, 아날로그적인 분명한 시각적 안심을 주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보면 확실하고, 보면 기억나니까.

그리고 적은 것은 ‘버스킹하기’였다. 이건 작가의 영화 출현하기를 보면서 적은 것이었다. 너무 도전하고 싶은데 계속 망설였던 것. 여기까지 도망나와 ‘하고 싶은 것’ 리스트를 만드는데 이왕 하는 거 도망 나온 용기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나 적었다. 노래는 무엇으로 하지, 언제 하지, 내가 버스킹을 하는 상상을 하니 빙그레 웃음이 났다. 신난다.

나머지를 더 적으려고 작가의 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니 작가는 프랑스에 가서 향수 사오기와 같은 항목들도 적혀 있어 나도 내가 갖고 싶은 물건도 적어볼까 했다. 당장은 사고 싶었던 필름카메라도 일회용이지만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으므로 뭐가 좋을까 앞보단 좀 더 길게 고민했다.






흠. 갖고 싶은 것. 당장은 꽃이 생각났다. 싱싱하게 피어 드러난 꽃. 한 송이 보다는 다발로 품에 안는 것. 꽃을 받으면 우선 그 색 색감의 꽃들이 나에게 색과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그에게 생그러움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꽃을 받는 다는 것은 나를 생각하는 그 순간과, 사랑을 받는 느낌을 주었다. 꽃을 고를 땐, 그 사람의 이미지나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생각하며 고르게 된다. 그래서 꽃을 받으면 나를 생각하는 그 순간의 당신이 보인다. 꽃과 함께 나는 그런 것들을 받는다.

그래, 나에게 꽃을 선물하는 시간을 갖자. 오늘, 나는 나에게 꽃을 선물하기로 했다. ‘나에게 꽃을 선물하기 (계절별). 꼼꼼하게 항목을 적은 나는 종이를 반 접어 내가 가져온 여행 책 중간에 끼어 넣었다.

할 일을 마친 나는 고개를 들었고 어느 새 중간 중간 자리가 많이 생긴 도서관을 한 번 쭉 바라보고 어느 새 비어 있는 내 앞의 자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나에게 약 1시간 동안 집중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준 당신을 응원했다.

방해되지 않게 의자를 들어 밀고, 조용히 일어나 도서관을 나섰다.

삑- 덜컹. 출입증을 찍고 출입문을 나서는 그 소리가 나에게 오늘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것 같았다.






체크인 가능 시간이 다다랐기 때문에 우선 숙소로 가 짐을 풀기로 했다. 대학교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휴대폰에 지도 앱을 이용해서 숙소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행히 아까 내린 광장에서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대학교 언덕을 내려오면서 천천히 골목을 다시 돌아봤다. 책방 골목을 내려와 잡화점 골목으로 들어갔다. 생활 잡화를 파는 가게에서 예쁜 찻잔을 구경하고, 또 다른 소품샵에 들어가 아기자기한 초와 스티커 등을 구경했다. 세 번째 골목에서는 카메라를 샀기 때문에 뭔갈 사진 않고 쭈욱 간판을 구경했다. 큼지막한 글씨로 적혀 있는 간판들이 개성 넘쳤다.

두 번째 골목 청과점에서는 과일을 하나 사가기로 결정했다. 숙소에 휴게실이 있다면 저녁 후식 겸 먹을 생각이었다. ‘어쩌면 숙소에 두고 나누어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청과점 하나를 골라 앞에 늘어진 과일들을 보며 어떤 것을 사 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바나나가 보였다. 과일 깎는 것에 영 재주가 없던 나는 껍질을 까기 쉬운 바나나를 하나 골라 담았다.






가방에는 떠나올 때 보다 많은 것이 들어 어깨가 무거웠다. 그렇지만 마치 전장에서 얻어온 전리품인 것처럼 든든하고 뿌듯했다.

첫 번째로 지나온 골목, 빈티지 옷가게에서는 옷을 하나 구매하기로 했다. 당장 저녁에 편하게 입을 바지 하나, 그리고 혹시 밤에 추울 것을 대비해 비닐 재질의 겉옷 하나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거의 바닥에 주저앉은 것 마냥 허리를 숙이고 찾아내니 마치 보물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문득 나도 모르게 약간 과소비를 한 것 같지만 어차피 집안에만 있으면서 쓰지 않고 모아진 돈을 생각하니 어딘가 생각 없이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 이따 숙소 근처에서 저녁밥을 사먹으면 오늘은 더 이상 다른 것을 구매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두 손 가득- 오랜만에 밖에 나온 기념이다.

옷이 가득 든 검정색 비닐봉지를 살랑살랑 흔들며 흐응- 콧노래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