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냉장인가 하는 그런 걱정>. 6화
대학교
길의 시작에서 천천히 걸어 올라오니 대학교에 들어섰다. 길에 적힌 ‘대학교’라는 글씨만 보고 올라 온 터라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아서 단숨에 언덕을 올랐다.
조금 높다란 언덕 위에 있는 대학에서는 삼삼오오 학생들이 책을 들고 가방을 메고,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회색빛의 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웅장함이 돋보이는 정문을 마주했다. 점심때가 살짝 지난 시간대라 학교 안에서 밥을 해결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 가끔 등산객들이 학교 뒤에 위치한 산에서 등산을 하다가 가끔 우리와 함께 학식을 먹었던 기억이 나, 나도 한 번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안된다고 하면 그때 다른 곳 찾아내려 가보자 하는 생각에 정문을 지나 대학 안으로 들어갔다. 풍경이 좋았다.
점심때라 그런지 곳곳에 사람들이 많았다. 중간 중간 놓인 벤치에 모여 앉아 그릇을 들고 함께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다 같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얼마 안 있을 학교 모습과 겹쳤다. 졸업반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얼마 있지 못할 학교가 그리웠다.
그러다가도 비단 학교라는 공간이 그리운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을 가득 채운 어지러운 것들이 생각나지 않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리움으로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미루고 버리고 온 그 일들은 아마 학교가 다시 시작하면 나도 이제 붙잡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래서 방학 때 만큼은 무엇 하나 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학기가 시작되면 어떻게든 할 일이었고 나는 그 전 학기에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사용했다.
나에게 매 돌아오는 그 전 학기는 애증의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참아서 그 시간을 흘러 보냈지만 원하진 않았다. 극악으로 힘들때 하루가 너무나 고역이었고 생각하는 힘, 기억하는 힘조차 없어. 내 머릿속에 남은 추억이라던가 기억들 그 사이에 드문드문 생각하는 것은 역시 과제와 시험 때 확인하고 학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 기억이 가장 생생하다.
나는 언제나 불안했고 그것에 따라 내가 한심했고 또 그것에 따라 우울했다. 불행의 사이클은 끊어질 줄을 몰랐고 나 스스로가 그것을 끊을 생각조차 없었으므로 남들이 그것을 알아채기 만무했다. 입으로 힘들다 몇 번 되 내어도 차마 입 밖으로 크게 내지를 수 없었던 이유는 두 번째 어둠 때문에 상담을 마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었고, 매번 힘들다고 상담을 받는 것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 학기는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면 무의식이 반은 회피를 덧입혔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이번학기가 더 기대된다고 되내었다. 전 학기에 대한 낯설고 기분 나쁜 의식을 애써 미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 곧 마주할 우리 학교의 배경에 따스한 이곳의 햇빛을 입혀봤다.
찬찬히 캠퍼스를 거닐었다. 햇빛이 내 머리위로 내리쬐었다. 처음 대학에 들어오고도 난 참 눈치를 많이 보고 지냈다. 새로운 관계인 선배들은 불편했고 술자리는 어색했다. 이제는 시간이 약인지, 동기들과도 잘 지내고 선배들과도 예전보단 잘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어둠이 드리워 심할때는 동기들의, 선배들의 말을 곱씹고 되 내이고, 옆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다시 확인 받았다.
아아, 지긋지긋하다. 매번 묻고 확인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 이상하다. 왜 그렇게 타인이 중요했을까.
나는 잘못되기 싫었다.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기 싫었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는 그 순간순간이 너무 피곤하고 지쳤다. 아무 생각하기 싫었지만 생각은 언제나 나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다시 생각하니 숨이 가빠왔다.
앉아서 쉬기 위해 근처에 빈 벤치가 있나 둘러보았다. 나도 이 학교 학생인 듯 앉아 눈을 감았다. 약간의 소란스러움과 약간의 북적거림이 숨어있기 좋았다. 앞선 벤치에 연인들이 보였다. 그냥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 나와는 다르게 어딘가 해방되어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나는 사랑받지 못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둠이 나를 잠식할수록 ‘이런 내가 감히 어떻게’하는 생각이 뇌를 스치고 나를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했다.
사실 그건 아직도 그렇다. 나는 아직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른다. 나도 예전에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그 시절,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어오고 모든 방면에서 그럭저럭 좋은 인상을 받고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어쩌면 나는 내가 스스로를 괜찮다고 생각한 이유도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면 갑자기 부담스러워진다. 내가 어느 정도까지 이 사람에게 나를 보여줘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 때 그 상황과 분위기에 맞추어 그 사람과 가깝게 지냈다면 항상 집에 돌아올 때 내가 너무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일까. 오해하면 어쩌지 하고 불안해했다. 사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내가 즐거웠던 만큼 그 사람도 즐거웠을 텐데. 가만이 앉아 생각해보니 나는 너무 세상을 내 위주로 바라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라지만 그건 내 인생에서지. 사람들은 다 각자의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그들에게 집중하지 나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없다. 이 세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보다 훨씬 더 적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그 주변인들 조차 다 알진 못한다.
어쩌면 내가 눈치보고 긴장했던 그 모든 사람들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느라 나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 하러 나를 생각하고 나를 밉게 생각하겠는가.
갑자기 떠오른 이 생각이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종종 이렇게 당연한 것을 힘겹게 생각하고 긍정하며 이해하면서도 돌아서면 같은 문제로 다시 힘들어한다.
가능한 하다면 이런 마음을 하나로 응집시켜서 내 마음에 타투 처럼 새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이러다가 또 언젠간 다시 우울 해지겠지. 그래도 다행 인건 나중에 떠올리는 것이 어쩌면 그 어둠이 아니라 이번에 내 눈앞에 보이는 학교의 푸르름과 다녀왔던 카페의 따뜻함과 바다의 짭조름함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다.
그거라면 조금은 기분 좋게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떠나 오길 잘했다. 이거 하나만큼은 그래. 내가 잘 하고 있다고 ‘내’가 인정해줄게.
앞에 보이는 예쁜 연인들의 뒷모습이 햇살에 담기자 나도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음에 또 내가 혐오스러워지면 그땐 생각보다도 이 사진을 꺼내 보자.
사진이 잘 찍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다음 순간을 위해 필름을 돌렸다.
슬그머니 찾아온 급격한 허기짐에 학식을 먹기 위해 학교를 둘러보기로 했다. 밥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를 보낼 숙소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우선 식당을 찾자. 강의실처럼 보이는 건물들을 지나쳐 학교 안으로 더 들어갔다. 조금 더 가보니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는 건물을 찾았다. 열려 있는 문으로 살짝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이 식당임을 알려주었다. 중정인듯 건물 가운데 한켠, 작은 공터가 딸려 있어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다음 수업 전까지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공터를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달그락 거리는 식기 소리와 함께 약간의 소란스러움. 따뜻한 음식 남새가 났다. 조금 복잡했지만 혼자 먹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함께 먹는 사람들 중간 중간 혼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나도 그들 중 한사람이 되기 위해 주문하는 줄을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몇 걸음 옮겨 길게 늘어선 줄을 찾았다. 어떤 메뉴가 있나 보고 싶어 줄 끝을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기계로 주문을 받고 있었다. 키오스크의 화면이 너무 작고 줄의 맨 끝에 서있는 내가 메뉴를 보기엔 역부족이었다.
뭘 먹을까, 무슨 음식이 있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내 앞에서 줄을 선 학생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오늘은 무조건 부리토야. 솔직히 여기는 부리토지. ”
“어제부터 그 소린데, *제2기식은 무조건 피자지. 여기만큼 토핑 많이 올려주는 곳이 없다고. 그리고 저번 주에 부리토 먹었잖아. 이번엔 피자야”
“토핑이면 부리토지. 터질만큼 넣어주는데 가성비 최고라고. 그리고 저번 주엔 피자도 먹었거든. 그러니까 이번 주의 시작은 부리토로 해. ”
* 제2기숙사 식당
투닥거리는 남학생들이 귀여웠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이곳의 가장 메뉴를 두고 경쟁하는 중이었다.
어떤 메뉴가 선택될지 나도 궁금해서 그들의 대화를 놓칠 새라 꼼꼼히 귀담아 들었다. 토핑의 재료와 소스.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은 음료까지 귀담아 들으며 두 사람의 메뉴 토론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줄은 짧아지고 내 앞에 있는 사람들 보다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이 배로 많아졌다. 서너 명만 지나면 이제 내 앞의 남학생들이 주문할 차례였다.
어떤 음식을 고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아씨, 빨리 골라. 이제 우리 차례라고.” “ 아 그러니까 피자 먹자고.” “아니 부리토 먹고 피자 먹었으니까 이번에는 부리토지.” 몇 번의 대화가 더 주고받아지고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진지한 토론은 부리또 학생의 한마디에 결정방법을 정하게 되었다. 가위바위보.
생각지도 못한 간단하고도 명쾌한 방법에 웃음이 났다. 어느 학생이 이길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손에 나도 시선을 집중하며 바라봤다.
“이긴 사람 메뉴로 먹는거야. 가위바위보”.
진지하고 귀여운 대결의 승자는 위풍 당당하게 걸어가 키오스크의 메뉴를 누르기 시작했다. 대결의 승자는 피자.
어느새 부리토를 외치던 학생은 주문을 하고 있는 학생의 옆에서 원하는 토핑과 음료를 말하고는 꽤나 아쉬운 듯 연신 피자 주문을 하는 학생을 방해하며 부리토 아이콘을 눌러댔다.
이 가여운 친구를 위해 이번에는 내가 부리토를 먹어주기로 했다. 얼마나 맛있길래 피자를 외치는 친구를 못내 못마땅한 듯 계속 구박하는 모습이 그 맛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앞서 두 학생이 한 것을 간간히 기억하며 키오스트에서 부리토 가게의 아이콘을 눌러 토핑들과 음료를 선택했다. 아까 그 진지한 토론을 귀담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한 주문서와 함께 영수증이 나왔고 두 가지를 잘 챙긴 나는 앉을 자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넓은 자리는 혼자 앉기엔 조금 부담스러워 창가 쪽의 작은 좌석을 찾다 두리번거리며 몇 걸음 옮기자 나와 같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는 일직선의 테이블들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 사이사이로 나도 한 자리 잡고 앉았다. 창가를 마주한 자리가 생각보다 명당이었다. 그렇게 바깥을 보고 움직이는 학생들을 구경하다보니 딩동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준비된 식사를 알리는 주문번호를 알리는 것 같은데. 주문번호를 어디서 부는지 알 수가 없어 식당 곳곳을 기웃거렸다. 내 번호는 아닐까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그때 멀리서 아까 내 앞에서 피자를 주문한 남학생들이 보였다. 주문서를 보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싶어서 나도 천장을 보려던 순간 내 머리 위로 전광판이 보였다. 내가 앉아있는 벽 창문위로 전광판이 놓여져 있었다. 머리 바로 위에 두고 소리만 딩동 나니 못 알아챌 만했다. 알고 보니 사람을 구경하는 햇빛 명당이지만 주문번호를 보기 위해선 꽤나 고개를 희생해야하는 아쉬운 자리였다.
몇 번의 딩동 소리를 듣고 나자 내 주문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부리토 가게를 찾아 내 쟁반을 집어 들어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주문건 불고기와 감자 튀김이 들어있는 옵션이었는데 방금 내 앞에서 토론한 남학생이 강력히 추천하던 메뉴였다.
토핑에 대한 장점을 부각하던 것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부리토 안은 몇몇 종류의 채소와 함께 불고기와 감자튀김이 꽤 가득 들어있었다.
불고기 부리토와 어울리는 음료로 추천한 시원한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고 포장지를 한 겹 벗겨 베어 물었다. 두툼한 토핑들이 튀어나올 만큼 가득 들어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내가 만약 직접 부리토를 주장한 남학생에게 이 메뉴를 추천받았다면 나는 그 친구에게 가서 당당히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었을 것이다.
부리토 한 입에 시원한 음료 한 모급. 이곳으로와 점심을 먹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슬슬 오늘 밤에 잠을 잘 숙소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을 가방에서 꺼내었다. 광장에서 음악을 들은 이후에 휴대폰을 다시 연 적이 없는대다 음악을 듣는 와중에도 울리는 전화와 쌓이는 문자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급한대로 당장 얘기해줘야할 당신들의 문자만 골라 확인했다.
나의 안전. 나의 상태. 나의 기분. 나의 위치를 묻는 질문들에 지금 내가 먹고 있는 부리토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잘 먹고 있습니다.
이해했을까. 사진으로 대답을 하고 근방의 숙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값 싼 숙소를 구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위치를 봐야할까.
그치만 아직 이 지역을 잘 모른다는 것이 걸렸다. 그때 골목길 서점에서 구매한 여행 에세이기 생각났다. 혹시 도움이 될 만한 곳이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꺼내 뒤적였고 한 페이지에서 나는 뒤적거리던 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처음엔 그냥 넘겨버릴 뻔 했다. 책이 가득한 책장이 찍힌 사진이 담겨 있었는데 중간 중간 커튼이 쳐저 있었다.
사진 아래에 함께 기재된 설명을 들어보니 이 책의 작가가 머물렀던 숙소인 듯 싶었다. 이게 무슨 숙소인가 싶어서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북카페’를 모티브로 한 캡슐 호텔 같은 것이었다. 소설책, 만화책등이 잔뜩 꽃혀 있고 숙소에 묵는 숙박객들은 밤새도록 이 책방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매력이 나를 유혹했다.
비싸진 않을까. 비싸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까울까. 가는 길이 나와 있으면 좋을텐데...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책에 설명되어 있는 숙소이름을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그래도 나름 블로그에 유명한 것인지 여러개의 후기들이 즐비어 나왔다. 하나 들어가보니 간단한 조식과 그 후기를 남긴 사람이 숙소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이 있어 마치 자취방을 알아보는 사람처럼 둘러보기 시작했다.
블로그 화면을 나가니 미처 처음에 보지 못한 숙소의 홈페이지가 보였다. 홈페이지 아이콘을 누르니 깔끔하게 생긴 노란색 베너가 나왔고 숙소 소개, 예약 현황, 이용 방법 등의 문구가 반짝 거렸다. 예약 현황을 누르니 여성 전용 도미토리가 따로 적혀있었다. 꽤 잘 마련되어 있는 숙소가 갈수록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휴가철 거의 마지막의 마지막 끝자락에,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그런지 빈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용 방법을 눌러 들어가보니 가격과 예약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가격은 저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가격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더 생각 하지 않고 이 숙소에 묵기로 결정했다.
다른 아쉬운 점을 계속 생각하면 하나를 선택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예약을 하는 방법을 보며 하나씩 휴대폰 화면의 스크롤을 내렸다. 내가 묵고 싶어 하는 방의 유형과 묵을 날짜. 결제 방법과 조식의 유무를 선택해야 했다. 밤 만큼은 긴장을 풀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고 싶은 마음에 여성 전용 도미토리를 선택했고 우선은 오늘 밤을 묵기로 결정해 1박 2일 날짜를 선택했다.
휴대폰에 연동되어 있는 카드를 결제 방법으로 선택하고 조식을 선택했다. 마땅히 이 지역을 알아보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먹어보고 싶은 음식을 아침부터 찾으러 나가고 싶지 않았다. 모든 선택 사항을 다시 체크하고 결제까지 완료하니 작은 창에 에약이 완료 되었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
혼자서도 나름 잘 하고 있다는 알림 같아 안심이 되었다. 곧이어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숙소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내용을 열어보니 예약 확인 문자와 함께 오는 방법, 체크인 시간 등을 명시해 두었다. 혹시라도 까먹을까 꼼꼼히 읽어보았다.
다행히 광장에서 가는 버스가 있다고 적혀있어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신이 오늘 하루쯤은 나에게 쉴 공기를 주고 계신 건 아닐까. 아니면 지금까지 힘들어 하던 나에게 이 세상을 놓지 말라고 조금 말미를 주는 건 아닌가. 갑자기 들어온 신의 배려에 웃음이 났다.
남은 부리토를 큼지막하게 한입에 털어 넣고는 음료를 꿀꺽하고 쟁반을 퇴식구에 가져다 놓았다. 캠퍼스를 조금 더 구경하다 숙소에 가서 짐을 풀기로 생각하고 식당을 나왔다.
배가 부르니 슬슬 노곤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집 떠나온 긴장이 풀리는 듯 싶었다. 어디를 가볼까 하고 두리번 거리는 와중에 유독 거대하고 예쁘게 지어진 건물 하나가 눈에 띄어 발걸음을 이끌었다. 같은 건물에 가려는 학생들이 중간중간 나의 일행이 되어 함께 나아갔다.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단단했다.
바로 앞에서 보니 꽤나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왜 그리 결단적인 표정으로 함께 했는지 건물표석에 다다르자 알게 되었다. 도서관이었다.
학문을 위해, 공부를 위해 옹기종기 모인 이 집합체 앞에서 나는 괜히 침을 꼴각 삼키고는 나도 들어갈 수 있나 하고 도서관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던 와중 커다랗게 만든 입간판 하나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일반인의 경우 옆 창구로 와주세요’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나 싶어 옆에 마련된 창구에 다가갔다.
앉아 있던 안경 낀 직원분이 보고 있던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뗀 채 나에게 물었다.
“도서관 이용 하시려구요?”
“네, 그런데 이 대학교 학생이 아닌데....”
“괜찮습니다. 일반인분들도 이용 가능하세요. 신분증 있으세요?”
혹여 그녀의 말을 놓칠 새라 정신을 붙잡고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건내 주었다. 내 신분증을 받은 직원이 서랍에서 ‘일반인 이용자’ 라고 적혀있는 카드가 달린 목걸이 하나를 건내며 말했다. “ 이거 입구에 찍고 들어가셔서 이용하시면 되고요, 신분증은 가실 때 여기서 이용증 반납하고 찾아가세요. 이 이용증으로는 대출은 안되시구요. 일반 지료실만 이용 가능하세요. ”
척척척 빠르게 진행되는 그녀의 설명해 일단 그녀가 건내주는 카드 목걸이를 목에 걸고 도서관 입구에 설치된 출입확인기계에 카드 목걸이를 가져다 대니 삑 - 하는 소리와 함께 막혀 있던 칸막이가 들어가며 내가 통과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우와-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질렀다. 낯선 도서관. 양 옆에 우뚝 선 서가 사이로 조심스레,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