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놓는 것.

낭만, 그것도 체력이 있어야 잘해 먹을 수 있습니다.

by 유우진

낭만, 그 옅은 광기를 위하여_뉴욕 편

(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etropolitan Museum of Art, 1000 5th Ave, New York, NY 10028, USA




“언니는 다이아몬드 같아. 어쩔 땐 부서질까 겁나는데 어떨 때 보면 또 원석같이 되게 단단해”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불안 감도는 꽤 높은 편에 속한다. 타인에 비해 불안해하는 상황과 항목이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단단한’, ‘강한’의 형용사로 조금은 꾸며진 이유에는

내가 어쩔 때 힘들어하는지를 조금은 알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면 좋을지도.





가지는 흔들릴지언정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 것.





개인적으로 중심으로 빨리 돌아오는 것은 꽤나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흔들려도 결국 돌아오고 , 회복력이 빠르니까 고난에서 그것을 만회할 기회와 시간이 더더 길어진다.





낭만이란 사실 예상치 못한 것이다. 생각지 못한, 그런 소소한 즐거움과 감동을 낭만으로 여기니까.






그것이 낭만의 매력이지만 가끔은 그런 순간이 아쉬움으로 남을 때도 있다.

바로 여유가 없을 때다.




사람은 여유가 없으면 낭만을 즐길 체력이 안된다.

몸이 피곤한데, 내가 힘든데 그런 낭만 찾을 여유가 어디 있냐고. 하지만 그래서 나중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게 참 아쉬운 순간이 있다. 아, 그때 그렇게 할걸 하고.





그렇게 때문에 일상의 그런 재미를 찾는 것도 결국, 어쩌면 체력이 뒷밤침 되어야 한다.

비단 물리적, 신체적 체력뿐만 아니라 낭만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적 근육과 여유도.





그렇게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루틴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을 나의 코어를 만들어 놓으면, 급작스럽고도 당황스러운 순간에서도

기는 빨리지만 무너지지 않으며, 충전의 상황에서 매우 가성비 있게, 금방 채워진다.




방공호 같은 것.

기초 대사량 같은 것.

마구마구 낭만을 먹어도 그것을 소화시킬 강인한 내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산책이 그것이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 나간다. 달리기를 한다. 와 같이 산책은 일종의 나의 공식이었다. 꼭 달리기지 않더라, 걷기, 경보. 우선 나가고 본다.

이것은 내가 서울에 있든, 수원에 있든, 맨해튼에 있든, 보스턴에 있든.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 꼭 내 집에서만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든 가능한 루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





따라서 보통 새로운 곳에 가게 된다면 보통 나는 기본적인 코스 한 두 군데는 마련해 놓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단 겸사겸사 동네 탐방을 하고.






기본적인 것이 탄탄하면 무너지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는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는 것이니까. 그리고 거기서 살짝 오늘은 새로운 길로 가볼까? 하는 것이 낭만의 시작일 것이다.




The Metropolitan Museum.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위치한 이 거대한 미술관은 감히 하루 안에는 그 안의 보물들을 다 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미드 가십걸,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 많은 영화의 배경화면이 되고, 다 걷고 나면 다리가 아픈 그 뮤지엄이 나의 일종의 산책 코스 중 하나였다.





하하 달리기 할만한 곳은 아니지만.




거의 별 일이 없다면, 매주 금요일 밤은 나는 멧에 갔다. 매주 금-토에는 저녁 5시까지가 아니라 9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퇴근하고도 여유롭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뉴욕주 거주자에게는 거주지 증명을 하고 나면 기부입장, 다시 말해 내가 기부하고 싶은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덕분에 나도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관람료를 지불할 수 있었다.




특히 집은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만 사용하고, 카페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저녁만 되면 문을 닫아버리는 뉴욕의 카페가 꽤나 원망스러웠기 때문에 밤에 문을 여는 뮤지엄이 꽤나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나에게는 시간문제였다.





따라서 일종의 루틴 된 셈이다. 매주 금요일 밤은 미술관으로 퇴근하기.





누구랑 같이 간다거나, 누굴 꼭 보지 않아도, 뭔갈 꼭 보지 않아도. 금요일 밤이면 일주일을 정리할 겸 미술관에 갔다.

오늘은 이쪽 관, 다음 주는 저쪽 관. 하며.



그렇게 다니다 보면 또 그 안에서 루틴이 생긴다.





비가 오는 날은 커다란 통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일명 비 멍을 때리기 안성맞춤이었다.

그 관은 이집트관과 2층의 아시아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은 아시아관을 둘러보고 내려와 앉아 통창 뷰를 마루리로 하루를 접었다.




밖에서 머리가 너무 아팠던 날은 중앙 입구로 들어가 왼편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유러피안 페인팅 섹션들을 둘러봤다. 특히 좋아하던 곳은 19세기 작품들. 모네와 고흐. 드가의 작품이 있는 복도 홀을 비롯한 방들이었다. 아예 모르는 작품을 보는 것보다, 아는 작품을 보니 바깥 생각에서 내 집중을 작품에 소환시킬 수 있었다. 일명 딴생각으로 돌려 막는 거였다.





저녁이지만 하늘색, 파란 하늘을 보고 싶다면, 비밀스러운 미로 속 저택에서의 설레는 데이트의 느낌을 가지고 싶을 때는 18세기 유러피안 페인팅, 주로 629번 갤러리 쪽으로 올라갔다. 이곳에서는 특히 프레임을 주로 구경했는데 레이스 같은 그 액자들을 볼 때면 가보지도 않은 유럽, 저택에 놀러 온 기분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면 연핑크색 옷, 연두색 드레스를 입고 미로가 있는 정원이나, 대저택에서 남몰래 돌아다니는 그런 둥실둥실한 마음으로.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99 Gansevoort Street, New York, NY 10014, USA



더 멧(The MET,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은 집 근처라 편의점 야식처럼 아쉬운 밤을 즐기고 싶을 때나 개인적으로 회화나 박물을 보고 싶을 때 종종 거닐었다. 하지만 가끔 퇴근 후 커피도 마시면서 저녁을 즐기고 싶을 때는 전철을 하나 더 갈아타고 조금 걸어서 시티 아래쪽의 휘트니를 갔다

.


현대미술관인 휘트니 뮤지엄 또한 금요일( 매달 두 번째 일요일도) 무료 티켓을 제공하며 야간 운영을 진행했다. (게다가 10시까지! 집에서 멧보다 멀어서 1시간이 늘어난 게 아주 공평하다고 느꼈다. )




더 멧은 웅장한 느낌이라면 휘트니는 조금 더 뻥 뚫린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고전과 현대 미의 차이와도 같이 느껴졌다.

실제 건물도 더 멧은 고딕의 신전 같다면 휘트니는 빌딩의 느낌이었다.




금요일 퇴근을 하면서

불금이라 밖에 있으면 정신없어, 집에 갈래.. 의 솜이불 같은 기분이라면, 집에서 파자마로 갈아입고, 늦은 밤까지 도란도란 귤 까먹는 기분이라면 -> 더 멧으로,

아 오늘은 아직 퇴근 후 이 기운이 다 안 빠지고, 좀 더 사람도 느끼고, 팔팔한 저녁이라 카페인 마시듯 오히려 바짝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싶다. 불금! 하면 멧이 아니라 휘트니로 퇴근했다.




우선 8층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시킨다. 테라스에서 커피를 들고 뻥 뚫린 야경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7층부터 거꾸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서 구경한다.

더 멧에서처럼 의 일종의 공식이었다.




종종 1층 로비에서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나는 전시가 새로 바뀌면서 운영된 댄스 클래스를 우연찮게 참석했다. 미술관에서 춤추기.




늘 그렇듯 8층에서 거꾸로 내려가다가, 오늘따라 눈에 밟히는 그림을 집 가기 전에 한 번만 더 눈에 담아야지 하고 잠깐의 루틴을 깨서 올라간 4층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

이로써 새로운 낭만도 획득.




코어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것은 어떤 상황이 와도 기본은 한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낭만이란 평소와 다른 작은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데, 평소의 것들이 항상 불안정하다면 그것을 소화하는 데 마저 내 에너지를 다 쓰게 된다. 그러니, 그려 너니 하던 것에서 작은 설렘을 시도해 보는 것에서 항상 낭만은 시작한다.

시도가 애매하면 뭐, 어떤가 기본적으로 하던 것은 늘 하는 것. 손해 볼 것은 없게 된다.



뉴욕에서의 하반기와, 한국에 돌아와서 만 한 달이 아직 채 안된 시점에는 방황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과 감정이 크게 바뀌니 어쩔 줄 모르고 휩쓸렸다.

그때 사랑에 빠져버린 뉴욕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던 나에게 해준 언니의 말을 되새겼다.





“네가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네 내면이야. 코어가 단단하면 넌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을 거야”





코어. 내장을 튼튼하게 만들자. 그 힘으로 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시작하자. 기본만이라도 제대로 하자. 기본도 못하면 정말이지 오히려 이도저도 아니게 될 거야.

잘 보려면, 기억하려면, 내실을 튼튼히 만들자.





한국 집에 돌아와서도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마치 리셋하듯. 꾹꾹 땅을 밟으며 한 걸음에 복잡함 하나. 한 걸음에 답답함 하나.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홀가분함과 씩씩함을 가지고 오기.





날이 많이 풀렸다.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하기 안성맞춤인 날씨가 되어가고 있다.

가볍게 휴대폰과 이어폰만 챙기고 집 앞으로 걸어보자.




평소에 조깅을 하던 편이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새로울 테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새로운 길로도 가보고, 갔다가 영 불편하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 혹시 아는가. 길을 가다 우연히, 또 우연히 좋은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할 지도.




취미가 뭐예요? 한다면 이젠 루틴이 생긴 그대는 당당히 저녁 산책하기를 말할 수도 있다.





다음엔 같이 가자.


낭만이네.





추신. 메트로 폴리탄 근처의 둘러보기 좋은 서점과 또 다른 뮤지엄


1. Albertine 972 5th Ave, New York, NY 10075 USA

목요일-화요일 (수요일은 휴무)

오전 10시~ 오후 6시


프랑스 대사관 문화 서비스의 한 프로젝트로 운영되는 서점으로 프랑스 서적들을 주로 다룬다.

미국 전역의 일부 서점들과 협력하여 만들어져 있는 프렌치 코너도 볼 만한 주요 코너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보이는 2층의 아름다운 천장!!!


로맨틱한 유럽풍의 감성에 흠뻑 느끼고 싶다면 Albertine에서 The MET까지 코스로 돌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2. The Met Cloisters. 99 Margaret Corbin Dr, New York, NY 10040 USA

목요일~ 화요일 (수요일 휴무)

오전 10시~ 오후 5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분관. 시티에서는 전철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중세시대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 뮤지엄으로 그 건물 자체 만으로도 고즈넉한 중세 유럽 별장 저택에 온 듯한 기분이다.

중간 정원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고, 새소리를 들으며 녹음을 눈에 남기고 돌아왔다.

위로가 되어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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